오스카르 디를레방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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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파울 디를레방거 박사'''({{llang|de|Dr. Oskar Paul Dirlewanger}}, [[1895년]] [[9월 26일]] ~ [[1945년]] [[6월 7일]])는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로,[[무장친위대]]의 악명높은 [[형벌부대]]인 [[친위대 제36무장척탄병사단|디를레방거 여단]]의 창설자이자 사령관이다사령관이었다. 디를레방거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 범죄|전쟁 범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차대전 발발 이전에는 [[제1차 세계 대전|1차대전]] 및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다.참전하기도 했으며, 최종 계급은 예비역 [[상급지도자]]이며,이다. 종전 이후 포로수용소에서 맞아구타당하여 사망한 것으로 죽었다추정된다.
 
== 유년기 ==
디를레방거는 1895년 9월 26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06년 이사한 후 대부분의 소년기를 [[에슬링겐암네카어|에슬링겐]]에서 보냈다. 에슬링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1913년 [[아비투어]]를 마쳤다.
 
== 제1차 세계대전 ==
디를레방거는 1913년 10월 1일 뷔르템베르크군에 입대하여 독일제국 제13군단 예하의 "König Karl" 척탄병 123연대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했으며, 복무는 1년 간의 지원병 과정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에 이 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독일의 벨기에 침공]]과 프랑스 전선에서 싸웠다. 그는 6차례 부상을 입고 [[철십자 훈장]] 2급과 1급을 받았으며 [[중위]] 계급으로 러시아 남부와 루마니아의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 전선]]에서 중대를 지휘하던 중 종전을 맞았다. 적대 행위가 중단되자 디를레방거의 부대는 루마니아 지역에 억류되어 있도록 명령받았지만 디를레방거는 명령에 불복종하고 600명의 부대 병력을 이끌고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의 전기작가 Knut Stang은 "이 전쟁은 디를레방거의 향후 그의 생애와 '공포 전술'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한 요인이 되었다"고 쓰는데, "알코올 중독과 가학성애적 성향을 포함하는 그의 비도덕적 성격이 전선 체험에 의해 더욱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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