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옹: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Huzzlet the bot (토론 | 기여)
잔글 로봇의 도움을 받아 동음이의 처리: 장소 - 장소 (동오) 문서로 링크 바꿈
9번째 줄:
고옹은 일찍이 [[채옹]]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여러 곳을 다스리면서 항상 치적이 있어서 [[손권]]이 [[회계군|회계]][[태수]]로 있을 때, 그를 회계군의 승(丞)으로 임명하여 태수의 일을 대신하도록 했다. 그 뒤 좌사마를 거쳐 대리봉상(大理奉常) 겸 [[상서령]]으로 임명되고 또 양수향후(陽遂鄕侯)로 봉해졌다. [[225년]](황무 4년), [[태상]]으로 바뀌어 임명되었고, 예릉후(醴陵侯)로 승진하여 봉해졌으며, [[손소 (장서)|손소]](孫邵)를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고, 상서의 일을 총괄했다.
 
고옹은 항상 민간에서 의견을 구했으며, 당시 정무에 맞는 것이 있으면 비밀리에 보고했다. 만약 이것이 쓰이면 공을 임금에게 돌렸고, 쓰이지 않으면 끝내 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손권]]은 고옹을 중시했다. 일찍이 [[손권]]이 정치의 득실을 자문하자, [[장소 (동오)|장소]](張昭)는 법령이 너무 많고 자세하며 형벌이 지나치게 무거우므로 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권]]은 묵묵히 있다가 고옹을 돌아보고 의견을 구하자, 고옹은 [[장소 (동오)|장소]]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손권]]은 이에 옥사와 송사에 대해 의논하고, 형벌을 줄였다.
 
교사 여일(呂壹)이 득세하여 많은 사람들의 작은 결점을 고발하여 대신들을 비방하고 무고한 자를 참소하였는데, 고옹도 이에 걸려들어 견책을 당했다. 여일은 고옹에게 죄를 주고, [[반준]](潘濬)을 후임 승상으로 올릴 생각이었으나, 황문시랑 사굉이 여일에게 [[반준]]이 여일에게 품은 적의를 알렸으므로, 고옹은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 여일이 권세를 잃고 그 행악이 드러나 죄인이 되자, 고옹이 여일의 죄를 물었다. 고옹은 온화한 말로 그 사안을 물었고, 옥에서 나올 때에도 여일에게 물었다. “그대의 마음 속에는 말하고 싶은 것이 없소?”상서랑 회서가 여일을 면전에서 꾸짖자, 고옹은 회서를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