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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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날짜 = [[1812년]] [[6월 24일]]~[[12월 12일]]
|장소 = [[러시아]] [[스몰렌스크]], [[보로디노]], [[모스크바]], [[베레지나 강]], [[라트비아]] [[빌뉴스]]
|결과 = [[프랑스]]의 대패, [[나폴레옹]]의 몰락 시작
|교전국1 ={{국기그림|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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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과정==
===원정 출발===
[[1812년]] [[6월 24일]] 약 60만 명의 프랑스군이 러시아 원정을 시작한다. 당시 출병된 프랑스군의 수는 65만, 75만 등 여러 설이 있다. 병력은 약 55만 800명의 정규군과 비전투원을 포함해 약 60만 명이었다.
 
그러나 4주 동안 진격하던 [[나폴레옹]]은 점점 지치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이 집과 곡식을 모두 태워버리고 후퇴하여 군사들과 말들이 쉴 곳이 없었다.
 
행군 7주가 되는 날에는 이미 프랑스군 3만 명이 과로로 죽은 뒤였다.
 
===퇴각 작전===
{{본문|스몰렌스크 전투}}
[[8월 17일]]에는 프랑스군 15만 6000명이 10만 명의 러시아군과 [[스몰렌스크]]에서 3일 동안 치열하게 [[스몰렌스크 전투]]를 벌였다. 러시아군은 후퇴하여 집과 식량 창고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본문|발루티노 전투}}
한편 [[8월 18일]] [[러시아]]의 [[미하일 보그다노비치 바클레이 데 톨리|미하일 바클레이 데 톨리]] 원수는 [[러시아]] 후방 부대 4만 명을 이끌고 [[미샬 네이]]의 프랑스 군단 3만 명과 [[발루티노 전투]]를 치뤘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6000명, 프랑스군은 7000명의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군은 다시 후퇴해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을 격멸한 기회를 놓쳤다.
===보로디노 전투===
프랑스군이 진격해오자 [[러시아]] [[차르|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미하일 쿠투조프]]에게 [[러시아]]를 지킬 임무를 맡기고 [[샹트페테르부르크]]로 후퇴한다.
 
{{본문|보로디노 전투}}
[[미하일 쿠투조프]]는 급히 요새를 구축하고 [[레온티 레온티예비치 베니히센]]과 [[표트르 바그라티온]] 장군과 함께 병력 12만 명과 대포 600문을 이끌고 [[모스크바]] 근교 [[보로디노]]에서 프랑스군 13만 명과 대포 500문에 맞서 대전투를 치뤘다. 치열한 전투 도중 [[표트르 바그라티온]] 장군이 전사해 포격전으로 방어선이 뚫리자 쿠투조프는 밤중에 후퇴했고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만 명, 러시아군은 4만 5000명이 전사했다. [[보로디노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다.
===모스크바 함락===
===러시아군의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