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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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가 전래되면서 많은 인도인이 관료로 채용되어 [[산스크리트]] 어가 법률 용어로 사용되었다. 즉 부남은 전형적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답게 인도와 중국 양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부남은 인도, 중국 간의 해상 교역 루트의 중계지로 번창해 특히 샴만에 접한 외항 오케오에는 교역에 의한 상품과 배후지로부터 온 집산물이 집적되어 활황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 역사 ==
[[그림:FunanMap001.jpg|thumb|200px|left|부남 왕국의 최대강역]]
=== 건국 설화 ===
푸난의 설화에 따르면, 힌두 물의 신 '나가왕'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도의 브라만 카운딘야(Koundinya, 混塡)가 도래하여 소마(Soma, 柳葉)라는 토착 '나가'공주와 결혼하여 부남국을 세웠다고 한다. 인도계가 계속 왕위계승을 하였으며 정확한 계승순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왕들은 '-varman'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산스크리트어로 수호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전성기 ===
부남 왕국은 3세기 초 판 시만 왕의 통치 하에 최대 영토를 이룬다. 그 강역은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 서쪽으로는 [[미얀마]]에 이른다. 판 시만은 함대를 양성하고 관료조직을 개편하여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해상 왕국을 완성한다.
 
=== 멸망 ===
부남의 속국이었던 [[진랍]]은 점차 강대해져 결국 7세기에 부남을 병합한다.
 
== 민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