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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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질로 인해 시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고 모임 불참 사실도 확인된 길선주는 체포된 32인 중 유일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하고도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제외되었으나, [[최린]]과 [[박희도 (1889년)|박희도]], 정춘수가 추후에 구체적인 친일 행위에 가담하여 변절자로 불린데 반하여 길선주는 공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이다.
 
그러나 최근 길선주가 1년 8개월동안 옥고를 치룬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2009년]] [[8월 15일]] 국가유공자로 추서될 예정이다.{{뉴스 인용
|제목=고 길선주 목사 90년만에 애국지사 되다
|url=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kmis&arcid=0921384032&code=23111111
|출판사=국민일보
|저자=유영대 기자
|작성일자=2009-08-12
|확인일자=2009-08-12
}}
 
 
[[1935년]] [[평안남도]] [[강서군|강서]]의 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던 중 [[뇌일혈]]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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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1980년]] 둘째 아들이자 목사인 [[길진경]]이 평전 《영계 길선주》를 펴냈다. 셋째 아들 [[길진섭]]은 화가이다.
 
== 주 ==
<references />
 
== 둘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