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티베트족 자치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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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950년대까지 무리는 반독립적인 신정 왕국으로 라마 왕이 대대로 무리 구시가지의 쿨루와 와얼제의 불교 수도원([[거루그파]])을 기반으로 통치하였다. 이들 라마교 사원은 1950년대에 중국 공산당들이 새로운 통치자가 되면서 전복되었고 [[문화대혁명]] 때 파괴되었다. 무리 구시가지의 수도원들은 현청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져있고 한 때 700명 이상의 수도사들이수도승들이 거주했다. 이것은 [[청나라]] 초반에 12년 동안 지어졌고 [[순치제]] 때인 1600년 경에 완성되었다. 이것은 티베트 라마 사원의 중요한 모델이 되었고 10m가 넘는 인상적인 [[미륵보살]] 황금상을 포함하고 있었다.
 
1987년 이래 무리의 수도원은 부분적으로 복구되었고 현재 80여명의 어린 수도승들이 살고 있다. 주변에는 와창이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작은 마을이 리탕 강 계곡 서쪽 가장자리의 해발고도 3000m 지점에 위치해있다. 다른 수도원들은 쿨루(현재는 캉우로 불림)에 있고 와얼제의 것은 여전히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있다.
 
== 행정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