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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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2=[[일본]]
|지휘관1=[[이순신]]<br/>[[원균]]
|지휘관2=[[와키사카 야스하루]]
|병력1=전선 90척
|병력2=전선 21척
|사상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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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그 전날, [[사천 해전]]을 치른 함대는 [[사량도]](蛇梁島)에 이르러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전투 당일 오전 8시 척후선으로부터 당포 선창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연합함대는 곧 당포(지금의 통영시 산양면 삼덕리) 앞바다로 나아갔다. 당포 선창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 및 소선 12척이 매어 있었다. 함대 지휘관은 왜장
이 전투는 사천 해전에 이어 두번째로 [[거북선]]을 앞세운 전투다. 특히 기함을 집중 공격하였는데, 중위장 [[권준 (1541년)|권준]](權俊)이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사살된 왜군만도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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