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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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그 비행기가 앵커리지 공항에서 우리 비행기 옆에 바로 있었던 그날 밤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 자매와 그 부모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죠. 비행기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했던 마지막 행동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사랑해요.”라고 수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ref>KAL 007 생존자 위원회 [http://www.rescue007.org/grenfells.htm The Grenfells]</ref>}}
 
당시 요격기의 조종사는 [[겐나디 오시포비치]]([[2003년]] 당시현재 61세)이다. 그는 관제소로부터 KAL기를 국제관례에 따라 유도착륙시키라는 명령을 받고서 여객기에 300m까지 근접, KAL 007기와 같은 고도로 날아가면서 전투기 날개 쪽에 달린 경고등을 깜박거리며 수차례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KAL기는 비행을 계속했으며, 조명탄을 4차례 발사했는데도 여객기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도를 높이자 관제소로부터 격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일어난 상황은 이러하다. 공격이 있었을 당시, 비행기는 35,000피트 정도의 고도에서 항해 중이었다. 충격을 받은 즉시, 기수가 오르고 (승강타를 연결하는 케이블 위의 십자관이 잘리거나 심하게 손상됨에 따라) 비행기는 38,250피트로 상승했다. 천 기장은 자동 조종장치를 끄고 비행기를 수동 조종하여 35,000피트의 원래 고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평 비행을 하다가 1분 30초 만에 점진적인 하강을 시작했다.<ref>KAL 007 생존자 위원회 [http://www.rescue007.org/docs/Korean/FAQ5.pdf 미사일이 폭파했을 때 KAL 007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ref><ref>[특파원칼럼] 밝혀야 할 KAL기 피격 진상 [조선일보]2005-07-26</ref>
 
그가 발사한 조명탄 미사일 4발에는 모두 250여 발의 산탄이 있었는데, 여객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또한 여객기 창문을 들여다보아도, 내부에 어떤 사람의 움직임도 볼 수 없었으며, [[2003년]] 현재에도 자신은 [[정찰기]]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여객기에는 [[대한항공]] 마크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1996년 소련 조종사인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KAL 007이 민간 비행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