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망소이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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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설 ==
천민고려시대 특수행정구역이었던 향, 소, 부곡 (천민집단이 아니면 천민과 양인의 중간계층)에 해당된 수공업자의 집단 거주지인 공주 명학소의 천민이던 망이·망소이는 [[1176년]]([[고려 명종|명종]] 6년) 음력 1월 굶주린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켜 공주를 함락하였다. 고려 정부는 선유(宣諭)에 실패하여, 정황재(丁黃載)·장박인(張博仁)에게 이를 토벌케 했으나 쉽지 않자,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키고 위무(慰撫)하는 등 반란을 회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응하지 않고 [[예산군|예산]]을 공략한 난민(亂民)은 [[1177년]](명종 7년) 정월 정부군의 토벌에 항복했다가 정부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그 해 2월 다시 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