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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은 [[정시 (연호)|정시]] 연간, 왕필과 노장에 대한 논의를 거쳐, ‘천지만물은 모두 무위를 근본으로 삼는다(以無爲爲本)’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無)는 사물을 열고 사물의 본분을 완성시키며,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하는 것이다. 음양 또한 무에 의지하여 생긴다. 고로 무는 모든 것 중 가장 귀한 존재다.” 라는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하안은 《[[주역]](周易)》, 《[[노자]](老子)》, 《[[장자]](莊子)》 등 삼현경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고, 이 셋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았다. 당시 유학자들은 이 삼현경을 모두 중시하여 연구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주역》은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하안은 철학의 방법론이 《주역》에 담겨있음을 알고 이를 높게 보았다. 《주역》은 음양(陰陽)을 논리적인 틀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음양의 운행으로 성립되는 ‘도(道)’는 이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 유용했다. 하안은 《주역》이 갖고 있는 논리적 틀이 다른 경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주역》의 ‘도’를 갖고 경전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였다. ‘도’는 곧 도가(道家), 즉 노자와 장자의 학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곧 그는 노장 사상을 유가의 경전에 대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하안은 자신의 저서 《도덕론》에서 결국 공자와 노자의 주장은 일치한다는 결론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논어》 〈선진〉편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회]](顔回)는 도에 가깝구나. 자주 텅 비어[空] 있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비어있다는 것은 먹을 것이 없다는 것으로 풀어, 공자가 제자 안회가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비관하지 않는 것을 칭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하안은 공(空)을 마음 속이 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도를 알 수 없다는 이론과 함께하고 있는데, 이는 《장자》에서 말한 “도는 허심에 머문다. 이 허심이 곧 심재(心齋 : 마음을 비운다)이다.”라는 격언을 통해 《논어》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논어》 주해자들은 하안의 해석을 채택하여 공자를 더욱 도가화하였다.
 
그러나 하안은 맹목적으로 도가 사상만 따른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하안은 《주역》을 중시하였는데, 《주역》은 음양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하안은 이러한 역학 관계 때문에 음양 또한 간과하지 않고 중요시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무(無)’ 가 ‘역(易 : 변화)’이며, 역이 곧 음양이고, 음양이 만물을 낳는다는 이론을 설파한다. 여기서 하안은 ‘역(易)’을 통해 논어를 풀이한다. 이러한 하안의 입장은 유가적 정명론을 통해 제도의 완비를 강구하는 것이다. 하안은 이러한 사상을 통해 정치 생활을 하며 많은 제도를 교체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해, 노자는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는다”라며 음양에 대해 언급은 하였으나 음양을 자신의 철학적 도구로 삼지 않았다. 여기서 하안과 노자의 이론적 차이가 보여지는 것이다. 하안은 기본적으로 유가의 경전 중 하나인 《주역》과 《주역》의 음양론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 하였으며, 《노자》의 ‘무(無)’를 《주역》의 ‘역(易)’으로 해석함으로써 무와 ‘유(有)’를 동일시하였다. 곧 그는 본질과 현상을 철저히 결합시키는 입장에 서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학계에서는 하안을 철저한 노장학자가 아닌, 인의(仁義)를 긍정하며 유가의 기본 이념에 충실하며 노장학을 연구한 유학자로 보아야보고 있는 한다것이다.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