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 (152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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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兪泓, [[1524년]] ~ [[159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지숙, 호는 송당, 시호는 충목, 본관은 [[기계 유씨|기계]]이다.
유 홍(兪 泓/1524-1594)
 
이조 선조(宣祖)때의 상신(相臣).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기계(杞溪) 사람. 명종(明宗) 8년(1552년)에 등제(登第)하고, 선조 25년(1592년)에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이 되고 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의 봉군을 받았다. 壬辰倭亂때 남보다 먼저 도망가려다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왕세자(王世子) 영조(令朝)에 배종(陪從)하였고, 각 도의 의병을 독려하였다. 시호(諡號)는 숙민공(肅敏公)이다.
판서 [[유여림]]의 손자로 [[154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 주서, 전적, 지평, 장령 등 청요직을 역임했다. [[1563년]] 정국을 주도하던 권신 [[이량]]을 탄핵했고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산릉도감의 도제조로 발탁되었다.
 
이후 호조참의와 충청도관찰사, 전라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거쳐 [[1587년]] [[명나라]]로 가서 [[종계변무]]에 성공했다. [[1589년]] 의금부판사로 [[정여립]]의 옥사를 다스려 [[1590년]] [[광국공신]] 1등과 [[평난공신]] 2등에 책록되고 기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선조|선조]]를 호종했다. [[1594년]] [[좌의정]]으로 왕비를 호종해 [[해주]]에 머물러 있으면서 시사에 관한 10조의 시무책을 올리기도 했다.
 
시문이 뛰어나 [[조선 선조|선조]]가 그의 시를 보고 직접 화운하기도 했고 독서를 좋아해 가장한 책이 1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분류:조선의 문신]]
[[분류:과거 급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