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정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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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864년 황제 [[보리스 1세]]가 [[불가리아]]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때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불가리아에 주교를 파견했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트 시는 선교 중심지가 되었다. 오흐리트의 성 클레멘스(선교사인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의 제자)는 많은 슬라브인에게 성직자 교육을 시켜 불가리아 민족교회의 기초를 마련했다. 보리스의 아들 [[불가리아의 시메온 1세|시메온 1세]]은 불가리아의 대주교를 총대주교로 선포했으나 시메온이시메온 1세가 죽은(927년) 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프레슬라프 수도에 있는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를 인정했다. 바질 2세 불가로크토누스 때 불가리아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의 특성을 가진 대주교관구가 되었는데, 대주교좌는 [[오흐리트]]에 있었다.
 
현재, 불가리아 국내에서 약 655만 명, 다른 유럽 국가들이나 북미에 100만에서 200만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