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베우스 왕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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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타르 1세]]는 다른 형제들이 죽자 모든 왕국을 계승 받지만 잠시뿐이고 그의 사후 4명의 아들들에 의해 쪼개진다. 그 이후 계속 왕국은 분열된 상태로 있다가 통합을 반복하였고 크게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고뉴]] 의 왕국으로 쪼개어진다.
 
[[679년]] [[토이데리히 3세]]는 다시 한번 모든 프랑크의 소왕국을 통일하였다. 이때부터 잠시 내전 기간을 제외하고 프랑크는 1개의 통일 왕조로 간주되지만 메로빙거 국왕의 실권은 없어지게 되고 각 왕국은 일종의 궁정 대신인 [[궁재|궁재(maior domus)]]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 중에서도 강력한 가문이 등장했는데 [[피핀 1세]]의 가문이었다. 이후 어린 아들을 남기고 요절하는 왕들의 출현으로 왕실의 실권은 낮아졌고
[[680년]]경 메로빙거 왕실과 인척관계를 형성한 [[카롤링거 왕조]]의 [[피핀 2세]]가 실권을 장악했고, [[714년]]에는 그의 사후 왕실 지지파가 피핀의 세력을 누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카롤링거 왕가]] 출신의 [[카를 마르텔]]이 실권을 잡기도 했다.
 
[[737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를 한 뒤 프랑크 왕국의 실권을 장악한 [[카를 마르텔]]은 왕의 자리를 넘보지는 않았으나, [[751년]] 결국 피핀 가문의 후손인 [[피핀 3세]]가 마지막 메로빙거 왕인 [[힐데리히 3세]]를 강제로 폐위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기원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마리아 막달레나]]의 자손이 시조가 되었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