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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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 Bild 183-H13717, Erich Koch.jpg|thumb|250px|에리히 코흐 (Erich Koch)]]
'''에리히 코흐''' (Erich Koch, [[1896년]] [[6월 19일]] ~ [[1986년]] [[11월 12일]]) 는 [[나치당]] (NSDAP) 의 대관구 지도자 (Gauleiter) 로, 1928년부터 1945년까지 [[동프로이센]]에서 대관구 지도자를,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제국판무관 (Reichskomissar) 을 지냈다. 코흐의 명령에 의해 나치 점령 하의 우크라이나에서 수천만명의 민간인 학살이 발생하였다.
 
==생애==
코흐는 [[1896년]], 독일의 엘베르펠트 (Elberfeld, 오늘날의 [[부퍼탈]]) 에서 생산현장 감독관인 직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엘베르펠트에서 전문학교를 다니며 화학을 공부하였고, 1915년까지 1918년까지 정규군이 아닌 의용군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22년]]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SDAP) 에 입당하였고, 루르 지역 대관구 대리 지도자를 거쳐 1928년, 프로이센 대관구 지도자가 되었다. 1930년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으며, [[1933년]] [[나치당]]의 정권 장악 이후, [[동프로이센]]의 주지사까지 겸직하게 되었다.
 
[[돌격대]]의 구성원이 되어 [[1938년]]에는 돌격대 [[SS대장|대장]] (SA-Obergruppenführer) 으로 명예 승진하였으며,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동프로이센 국방 위원 (Reichsverteidigungskommissar) 이 되었다. [[폴란드 침공]] 뒤에는 몇몇 폴란드 영토를 자신의 관구로 얻었으며, 그의 폴란드인을 향한 악행으로 무수한 폴란드인이 희생되고, 특히 땅을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사유지로 만들기도 하였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나치 점령 하의 [[우크라이나]]에서 제국판무관 (Reichskomissar) 으로 근무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을 크게 억압하였고, 독일이 패전한 뒤인 [[1949년]], [[함부르크]]에서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그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영국은 그를 [[폴란드]]에 인도하였고, 1959년에 폴란드인 학살과 억압의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범죄는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 코흐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고, [[1986년]] [[폴란드]]의 교도소에서 사망하였다.
 
{{토막글|나치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