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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東方朔 [[기원전 154년]] - [[기원전 93년]])은 [[한나라]] 때 사람이다. [[한 무제]]때에 벼슬을 했다.
 
자는 만천(曼倩)이고 평원(平原) 염차(厭次, 지금 [[산서성]](山東省) 양신현(陽信縣) 동남쪽에 해당되는 지역) 사람이다. [[서한]](西漢) [[무제]](武帝) 시기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과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동방삭은 생존할 당시부터 이미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특히 동방삭의 해학과 말재주를 좋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동방삭에 관련된 설화는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하였다. 《한서(漢書)》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에는 그의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非有先生)〉,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禖)〉, 〈병풍(屛風)〉, 〈전상백주(殿上柏柱)〉,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외 《신이경》과 《십주기(十洲記)》 등 지괴(志怪)소설의 저자가 동방삭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 가탁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애==
 
==전설==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고,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다고도 한다. 원래 별의 요정이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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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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