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로마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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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llang|la|Pax Romana}}) 또는 '''로마의 평화'''는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최소화하면서 오랜 평화를 누렸던, [[1세기]]와 [[2세기]]경의 시기를 말한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로 불리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기원전 27년]]에서 [[180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고대 로마 역사상 유례없는 태평성대이긴 하였으나, 군사적인 충돌도 일어났다. 황제들은 이따금 발생하는 속주의 반란에 대처해야 했으며, 국경 지역에서는 소소한 교전이나 대규모 정복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와 전쟁을 치렀으며<ref>{{서적 인용|html=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assius_Dio/68*.html|저자=디오 카시우스|문서형식=html|제목=로마사, 68권|언어=영어}}</ref>,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통치 후반기를 대부분 [[게르마니아]] 전선 등 최전선에서 지냈다.<ref>{{서적 인용|url=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assius_Dio/72*.html|문서형식=html|저자=디오 카시우스|제목 = 로마사, 72권|언어=영어}}</ref>
팍스 로마나는 [[평화]]라는 고상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로마 제국]]이 평화 유지를 구실로 약한 민족의 반항을 억누름으로써 유지된 거짓 평화였다.<ref>《예수,신화인가.역사인가.》/정승우 지음/책세상</ref>따라서 팍스로마나 시대의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들은 번영과 평화를 즐길 수 있었지만, 식민지에서는 하수인<ref>[[마태 복음서]]에 나오는 세리와 [[누가 복음서]]에 나오는 세관장 삭개오가 유대 민족에게 죄인이라고 불린 이유도 로마제국의 하수인노릇을 하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사람 그것도 같은 [[민족]]을 착취한 세리와 세관장들의 행동은 이들이 로마제국의 하수인 노릇하는 죄인이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했을 것이다.</ref>들과 로마제국이 세운 지역권력의 [[경제]]적인 착취와 군대의 무력에 의한 억압으로 고통받았으며, 착취에 시달린 [[식민지]] 민중들의 반란과 이에 대한 로마제국의 무자비한 폭력([[십자가]]에서의 공개처형)과 [[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제국의 번영과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희생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팍스 로마나로 인한 식민지 주민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ref>《기독교사상》2005년 2월호,제국과 그 대안-마가복음서 10장,양권석,대한기독교서회</ref>
 
팍스로마나에는 팍스(평화)라는 말이 붙기는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군사적인 충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제들은 이따금씩 발생하는 식민지의 반란에 대처해야했으며, 국경지역에서는 작은 전투들이나 정복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을 치렀으며<ref>{{서적 인용|html=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assius_Dio/68*.html|저자=디오 카시우스|문서형식=html|제목=로마사, 68권|언어=영어}}</ref>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통치 기간의 후반기 대부분의 기간을 [[게르만족|게르마니아]] 전선 등의 최전선에서 보냈다.<ref>{{서적 인용|url=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assius_Dio/72*.html|문서형식=html|저자=디오 카시우스|제목 = 로마사, 72권|언어=영어}}</ref>
 
하지만, 로마 제국 국경 안에서는 전쟁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팍스 로마나의 시기는 [[제 3세기의 위기]]때와 같은 큰 내전이나, [[2차 포에니 전쟁]]처럼 강력한 외적의 침공도 없이 상대적으로 평화로왔다. 이 기간 동안 로마의 상업은 융성하였으며, [[해적]]이나 약탈군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가들은 "팍스 로마나"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어떤 [[헤게모니패권]]에 의하여 상대적인 평화가 정착이 되었을 때에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팍스 아시리아카(Pax Assyriaca),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 팍스 유로피아나(Pax Europeana), 팍스 게르마니카(Pax Germanica), [[팍스 히스파니카]](Pax Hispanica), 팍스 미노이카(Pax Minoica),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팍스 오토마나(Pax Ottomana), 팍스 시니카(Pax Sinica), 팍스 시리아나(Pax Syriana) 등이 그 예이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