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187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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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2004-03-18
|확인일자=2008-07-06
}} </ref><ref> {{뉴스 인용
|저자=성강현
|제목=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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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2004-03-18
|확인일자=2008-07-06
}} </ref> 이 책자에는 김한규가 조선의 부호치고 특이한 인물이라 유흥에 별 관심이 없고 사회 활동을 즐겨, 이상적인 인격으로 청년의 모범이 된다는 평이 실려 있다.
 
실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대정실업친목회]] 등 각종 친일 단체에 가담<ref> {{서적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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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208쪽
|꺾쇠표=예
}} </ref> 하였고, 조선국방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종7위 훈5등에 서위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과 친일단체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중추원과 경제 부문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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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
[[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수록자]]
[[분류:서울특별시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