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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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
[[1899년]] [[9월 18일]] 개통한 [[경인선]]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연결하는 노선이었지만, 개통 당시에는 [[한강]] 바로 앞의 [[노량진역|노량진]]에서 끊겨 사실상 서울을 연결해 주지 못했다.. 이는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의 개통으로 [[한성부]]에 드디어 철도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서울역은 이 때 '남대문정거장'(南大門停車場)이라는 이름으로 10평짜리 목조 바라크 건물을 염천교 아래 논 가운데에 대충 짓고 문을 열었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하였고, [[1906년]]에는 경의선이 개통하는 등 교통이 개선되었으나 그 규모는 보잘것 없었다. [[경성부]]의 인구가 늘어나자증가함에 따라 경성의 관문이 될 중심 역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는데, [[경부선]]·[[경원선]]·[[용산선]]이 만나는 [[용산역]]은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데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 신역사 건설에는 부적합했다. 따라서 도심과 가까운 기존의 남대문정거장을 경성역으로 개량하기로 하고 [[1922년]] 역사 건설에 들어갔다. [[1923년]] [[1월 1일]] '경성역'(京城驛, 게이조 역)으로 역명을 바꾸고<ref>《동아일보》, 1922년 12월 29일.</ref> 본격적인 경성부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도쿄 역]]에 이은 동양 제2의 규모로 지어진 역사는 [[1925년]] 완공되었고, 이후 [[만주]] 방면의 국제열차를 취급하는 등 한반도의 철도교통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경성역은 광복 이후 [[1947년]]에 '서울역'으로 개명하였고 [[한국 전쟁]]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최대 역으로 발돋움하였다. [[1957년]]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경의선]]만 취급하는 서울역 서쪽에 서부역사를 신설하여 지역 주민들의 여객 이용을 도왔고, 60-70년대 경제성장기를 거쳐 여객 규모가 커졌고 기존 역사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송량을 보이게 되어, 이에 따라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 발맞춰 [[1988년]]에 서울역사와 서부역사를 연결하는 선상역사를 준공하였다. 이후 [[한국고속철도|KTX]] 운행이 가까워 오자 신역사를 착공, [[2003년]]에 현재의 역사를 새로 건설하여 [[2004년]] 4월 1일에 [[KTX]]를 취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