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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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당히 기품 있는 집안에서 루드빅 쿤데라([[1891년]]~[[1971년]])의 아들로 태어났다. 루드빅 쿤데라는 작곡가 [[레오슈 야나체크]]([[1854년]]~[[1928년]])의 문하생이었으며, 체코의 주요한 음악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1948년에서 1961년 사이에는 브르노 뮤지컬 아카데미의 수장이었다. 쿤데라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나중에는 그 역시 음악학을 공부했다. 이러한 음악적 배경은 그의 작품의 근간이 된다. 심지어 그는 악상 기호를 텍스트 속에 그려 넣기도 했다.
 
1948년, 그는 [[브르노]]에서 중등교육 과정을 마친다. 그는 [[찰스 대학교]](CahrlesCharles University)의 예술학부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으나, 두 학기만에 [[프라하]]의 공연예술 아카데미의 영화학부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영화 기획과 희곡 창작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영화 아카데미 AMU에서 조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0년에, 그는 잠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학업을 중단 당했다. [[1952년]] 졸업 후에, 영화 아카데미에서 세계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쿤데라는 민주주의의 체코슬로바크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 속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젊은이의 사상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그와 [[얀 트레풀카]](Jan Trefulka)라고 하는 체코의 작가는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다. 트리펄카는 이 사건을 그의 중편소설 《그들에게 내린 행복》(1962)에 묘사했다. 밀란 쿤데라 역시 이 사건을 《[[농담]]》(1967)에서 메인 테마로 사용하였다.
 
1956년에 밀란 쿤데라는 공산당에 재입당한다. 1970년, 그는 또 다시 당에서 추방 당했다. 쿤데라는 1968년 체코의 예술가이자 작가인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과 함께 [[프라하의 봄 (운동)|프라하의 봄]]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