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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남조)|송나라]] 말기 시조 소도성은 난릉(蘭陵)출신의 하급병사 신분으로 서서히 출세하여 송나라 왕실의 [[유휴범]](劉休範)의 반란을 진압하여 권력자가 된뒤 황제를 폐위하기로 결정하고 [[479년]] [[순제]](順帝)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나라를 건국했다.
 
[[482년]] 고제(高帝)는 즉위 3년만에 죽고, 아들 [[제 무제|무제]](武帝)가 즉위했다. 2대 무제(武帝)는 아들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을 상류로 보내 송나라 [[효무제 (송)|효무제]]이래 실시했던 태사(台使)파견을 중지했다. 태사는 조세대납 지역에 대해 중앙에서 그 감시를 위해 내려보내는 관리였으나 부정부패가 심했고, 명문출신의 지방관과 대립하여 악평이 많았다.
 
무제는 또한 교적관(校籍官)을 시켜 호적을 조사하고 정리하였다. 수년에 걸친 토지조사 및 호적조사로 부정부패때문에 토지를 빼앗기고 국경근처에서 떠돌던 많은 백성들이 호적에 복귀하였다. 무제는 중서사인 채법량, 여문도을 시작으로 한문출신의 인재를 등용하여 귀족을 제압했다. 이로 인해 귀족의 지지는 잃어버렸으나, 치세 전반에 걸쳐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도시가 번영하였다는 평이 전해졌다. 무제의 치세는 ''영명의 치(永明의 治)''라 불리며 11년간 계속된 뒤 2명의 어린 군주들의 짦은 재위을 거쳐 [[명제]]가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