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성씨):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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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풀 채 蔡= 채(蔡)씨의 발상지는 하남성 상채(上蔡)현이며, 세거지는 산동성 정도(定陶)현, 절강성 반안(磐安)현이다. 인물로는 중국 후한(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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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2일 (금) 16:23 판

풀 채 蔡

채(蔡)씨의 발상지는 하남성 상채(上蔡)현이며, 세거지는 산동성 정도(定陶)현, 절강성 반안(磐安)현이다. 인물로는 중국 후한(後漢) 때 발명가 채륜(蔡倫: ?-121), 후한(後漢)의 문인 채옹(蔡邕: 132-192)등이 있다. 한국 채씨는 신라 내물왕 때 채보한이 있는데, 현재 채씨 유일 보관인 평강 채씨와 관련성을 고증 할수 없다고 한다.

평강 채씨 시조 채송년(蔡松年)은 고려 고종 때 추밀승선을 지냈다. 그는 홍주에서 일어난 최향의 난을 평정했으며 몽고병이 침입을 막아내 대장군이 된다. 시조 채송년의 묘소가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 있어 후손들이 평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나물 채 菜

영양 채씨의시조 채성룡(池成龍)는 조선 명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소윤과 이조 참의 를 역임한 후 임진왜란때 공을 세워 영양군와 채씨성을 하사하였으며 후손들이 채성룡을 시조로 모신다. 채성룡(菜成龍)의 선계에 대해서는 고증할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히 상고 할 수 없다. 다만 채성룡은 청송 지씨(일명 울진 지씨)의 선조 지서룡(池瑞龍)과 채성룡이 형제이라고 기록이 있는데 고증할 문헌이 없다.

풍채 채 采

여산 채씨의 선계, 연원은 미상하다. 송자을 채자로 잘못 기입하여 생긴 성씨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한자을 잘못 기입하더라도 한글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근거가 없다고 보여진다. 채씨는 청나라 때 미(米)자 위에 ‘모자’ 을 더하여 채(采)씨로 고쳐 성으로 했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고증할 문헌이 없고, 한국 채씨와 관련성을 고증할 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