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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신시'''(神市)는 [[환웅]]이 세우고 다스렸다고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조선]] 이전의 신화적인 도읍지 또는 국가이다. 신시의 다른 이름은 '''배달'''이다. 고조선 이전의 도읍지도읍지로 일컬어지기는 국가로 일컬어진다. 한편 한국 강단사학계에서는하지만 신화적인 면이 강하고 신화의 구성 요건 상으로도 [[한민족]]이라는 존재의 형성 이전이기 때문이라며때문에 존재를일반적으로 부정한다.한민족 하지만,최초의 당시는국가라고 단일민족보지는 개념의않는다. [[한민족]]이일부 아닌재야사학자 동이족의 개념으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네티즌들은 신시는신시가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의 하나로하나라고 간주된다.주장하기도 [[고조선]]의 건국을 신화로 매도하는 개념에서 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한다.
 
== 개요 ==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시는 환웅이 하늘에서 무리 3천과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이끌고 내려와 세상을 다스린 곳이라고 한다. 그 위치는 태백산(太伯山) 신단수(神壇樹) 아래였다. 환웅은 신시에서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신시는 훗날 [[단군 왕검]]이 [[아사달평양]]에 도읍을 정하여도읍하여 고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신시배달국의환웅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시는 일부 기록에서 인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규원사화]]》나 《[[동사 (허목)|동사]](東事)》에는 환웅을 ‘신시씨(神市氏)’라 지칭하고 있다.
 
== 의미 ==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신시를신시는 신정시대(神政時代)에 도읍 주변에 있던 별읍(別邑)으로 [[삼한]]의 [[소도]](蘇塗)와 같은 성격의 신읍(神邑) 또는 성역으로 해석했다해석된다. 또는 지명이 아닌 환웅을 가리키는 인명으로서 삼한의 신지(臣智)와 같은 존칭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ref>이병도, 《한국사 -고대편-》, 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59년</ref>
 
'신시'를 글자 대로 풀이하자면 '신의 시장(저잣거리)'이다. 신시를 신의 도시로 해석하는 것이 종래의 설이나, 시(市)가 도시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므로 신시를 신불(市:슬갑 불; 巾-총4획)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불은 고대말로 현재의 땅이라는 뜻으로 '벌'이라는 현대어가 남아 '벌판'등으로 쓰인다<ref>신종원, 단군신화에 보이는 樹木信仰, 韓國史學史學報 8, 5-22 (2003) </ref>. 후대의 신라, 서울과 동형으로 보기도 한다.
 
== 사서야사 속의 신시 ==
《[[환단고기]]》에서는 신시를 '''신시배달국'''이라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신시배달국 또는 배달국은 고조선 이전의 고대 국가로 기원전 4000년 경에 [[환국]]의 뒤를 이어 성립되었으며 1565년 간 존재하였고 그 군주가 바로 환웅이라고 한다. 환웅은 모두 18대의18대를 환웅들이이어 신시배달국을 다스렸다고 하며, 그 상세한 역년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역대 환웅들 가운데 일부의 치세도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14대 환웅인 자오지 환웅의자오지환웅의 기록이 상세하다. 자오지 환웅은 치우천황이라고도 일컫는데 헌원과의 전쟁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어, 중국 역사서에서도 두려움의 존재인 전쟁의 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묘족의 후예인 묘족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빌미로 한족이 이민족 취급을 하던 치우천황을, 이른바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아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조상에 편입시키려는 술책을 벌이고 있다.
 
《[[규원사화]]》의 〈태시기(太始紀)〉에는 성스러운신격에 가까운 존재인 환웅 또는 신시씨가 인간세상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치세 기간은 궐천년(闕千年, 11000년) 또는 궐백년(10100년)이라 한다. 신시씨는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 주인씨 등을 부렸다고 하며 《환단고기》와 일부분 중복되는 치세 기록이 존재한다. 전체적인 성격으로 본다면, 〈태시기〉는 창세를 다룬 〈조판기〉를 이어 처음 생겨난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여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우기 직전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부도지]]》에는 성스러운신적 존재인 환웅씨가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는 내용이 나타나며 ‘신시’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에 함께 모여 서로 돕고 화합하고 이치를 배우는 자리로서 세워졌다고 한다. 신시는 10년마다 열렸으며, 마음을 정화하고 하늘을 살피며, 희생물로 제를 지내고 모여 노래하는 곳이라고 한다.
 
김교헌의 《[[신단민사]]》에는 천신(神市氏)이 개천 갑자 상달(10월) 초사흗날(3일)에 ‘신시’의 시대를 열고 120년 간 백성을 가르치고, 무진년 10월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배달국 ==
한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들야사들 가운데 세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은 《환단고기》이다. 인식이 있는일부 재야사학자 및 국민들은네티즌들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믿고,신봉하여 신시배달국 또는 배달국이 만주 및 한반도, 화북 지방을 지배한 초강대국이며 신시배달국의 14대 군주인 자오지 환웅은 중국의 역사서에 기록된대로기록된 헌원에게 연전 연승한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악신 [[치우]]와 동일라고 인물이다주장한다.<ref>임승국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년 등</ref> 중국 사서에 ‘구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도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ref>여운건·오재성, 《과학으로 밝혀진 우리고대사》, 2004년</ref>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한국사학계에서는 강단사학계에서는, 일제시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역사서를 수거하여 소각 내지는 일본으로 약탈해간 후 '증거를 대보라'는 식의 이른바 '실증사학' 이론을 그대로 인용하여, <<환단고기>>를 비롯하여 이들을이들이 근거로 삼는 야사들이 대부분 [[위서 (역사학)|위서]]이며 그 내용 또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제 침략기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조선사의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아 교육받아온 사학자들의 대를 이어온 현재없기 사학계의때문에 입장에서는이를 터부시되고인정하지 있다않는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