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우지쓰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0번째 줄:
* 이세씨가 호조씨로 성을 바꾼 것은 [[1523년]] 6월에서 9월 사이이다. 이는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간토를 지배한 [[싯켄]](執權) 호조씨(이세씨의 동족)의 후예라고 자청하여 정통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 「虎」와「郡」이 새겨진 도장을 사용한 문서가 다수 현존한다.
* 정치가로서는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평이 있다. 사가미에서 센고쿠 다이묘로서는 최초로 토지검사를 실시하고. 가신단의 지배하에 있는 영민을 다스리는 데에 진력했다. 평정중(評定衆,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기관 또는 부서)·봉행(奉行)을 영내에 설치한 자도 그였다. [[호조 소운의소운]]의 시대에 정치가 호족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호조 우지쓰나]]는 호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강권을 발동하고, 그들이 영내에서 자의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등 권력을 점차 호조가로 집중시켜 가문 번영의 기반을 닦았다.
* 후계자인 우지야스를 위해 1541년 5월, 5개조의 훈계장을 아들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