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이 나가마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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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다 신겐의 움직임 ===
겐키 3년([[1572년]]) 7월, 노부나가의 5만 대군이 오미를 급습했다. 나가마사는 동맹국인 에치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에게 15,000명의000 명의 원군을 얻었지만 정면 충돌을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군세가 뒤지고 있어 괴로운 상황이었다. 같은 해 9월,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응하는 형태로 [[다케다 신겐]]이 2만 7,000명을000 명을 이끌고 본거지 [[가이노쿠니|가이]]를 출발하였다. 신겐은 이 시기에 나가마사 부자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 후, 신겐은 [[도토미노쿠니|도토미]]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를 격파하였고 도쿠가와 영지의 [[미카와노쿠니|미카와]]로 진격하였다. 나가마사는 오미에 머물렀던 오다 군을 [[미노노쿠니|미노]]로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오다 군의 물량에 밀려있던 나가마사에 있어서 신겐과의 연합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중요 작전이었다.
 
그러나 동년 12월,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군이 군사들의 피로와 폭설을 이유로 에치젠으로 돌아가게 되자 오미에 묶여 있던 오다 군은 미노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자이의 병력만으로는 퇴각하는 오다 군을 뒤쫒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케다 신겐]]은 요시카게의 독단에 격노하여 재출병을 재촉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요시카게는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케다 신겐]]은 다음 해 2월까지 요시가케를 기다리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이에야스의 [[노다 성]](野田城)을 공략한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은 긴 전쟁의 피로, 추위, 요시카게에 대한 실망 등으로 인해 지병이 악화되어 끝내 병사하였다. 다케다 군이 퇴각함으로써 포위망이 완전하게 무너져버려 노부나가의 대군이 아사이-아사쿠라 연합을 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 아자이가 멸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