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시들해봇 (토론 | 기여)
잔글 로봇의 도움을 받아 동음이의 처리 : 그리스-터키 전쟁 - 그리스-터키 전쟁 (1919년-1922년) 문서로 링크 걸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파일:Carte Lycie.png|thumb|thumb|255px|고대 그리스 인에게 알려진 뤼키아의리키아의 위치]]
'''뤼키아리키아'''([[그리스어]]: Λυκία, Lycia)는 오늘날 [[터키]]의 남동 해안의 [[안탈리야]]와 [[무글라]]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이다. [[로마 제국]] 성립 후 속주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는 뤼키아인을리키아인을 [[히타이트]] 연맹이라고 나온다. 뤼키아는리키아는 아마 기원전 1250년경 [[아수와]] 동맹의 구성 국가였는데 '[[루카 (뤼키아리키아)|루카]]'(Lukka)로 나타난다.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 후, 뤼키아는리키아는 독립 신히타이트 왕국으로 부상하였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뤼키아는리키아는 [[아테나이아테네]]의 [[판디온 2세]]의 아들인 [[뤼코스리쿠스 (신화)|뤼코스리쿠스]]의 이름을 따 지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이 영역은 한 나라로 통합되지 않았으며, 독립적인 도시국가들이 굳게 결속한 동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아 전쟁]]에서 뤼키아는리키아는 두 존경받는 전사 [[사르페돈]]과 [[글라우코스]]의 지휘 아래 [[트로이아]] 편에서 싸웠다고 한다.
 
다른 [[그리스 신화]]에는 뤼키아리키아 왕국은 다른 [[사르페돈]]이 지배하였다고 한다. 그는 [[크레테]]에서 왔으며 [[미노스]] 왕의 형제이다. 사르페돈의 추종자들은 '테르밀라이'라 불리었으며 그들이 밀리안(Milyans)이라 불리는 민족을 정복하고 왕조를 창건하였다. 이 신화적인 이야기는 [[밀레토스]]의 창건 이야기와 더불어 크레테가 소아시아에 정착과 관련이 있음을 뜻한다. 뤼키아는리키아는 그리스 신화에 [[벨레로폰]]의 이야기에도 나오는데 그는 결국 뤼키아리키아 왕 [[이오바테스]](또는 암피아낙스)의 왕좌를 계승하였다.
 
뤼키아는리키아는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때 [[메디아]]의 [[하르파구스]](Harpagus)는 [[키루스 대왕]]의 장군으로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정복하였다. 하르파구스의 후손이 [[기원전 468년]]까지 다스렸는데 그때 아테나이가아테네가 이들을 무너뜨렸다. 그후 페르시아는 기원전 387년 다시 점령하였고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지배를 유지하였다. 이후 뤼키아는리키아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손에 넘어가고 [[기원전 189년]]에는 [[로마 공화정|로마]]에 정복되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서기 [[4년]]에 이 곳에서 피살되었다. [[43년|서기 43년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뤼키아를리키아를 로마제국의 속주로 병합하며 그것을 [[팜퓔리아팜필리아]]와 통합하였다. 뤼키아는리키아는 결국 그리스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되어 [[터키]]의 일부가 되었다.
 
20세기 초 [[그리스-터키 전쟁 (1919년-1922년)|그리스-터키 전쟁]]이 일어난 뒤 이 지역에서도 그리스와 터기의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인구 교환]]이 시행되었다. 오늘날 뤼키아는리키아는 터키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뤼키아는리키아는 트리밀리라는 이름을 지니는데 그것은 파타라 발굴에서 고대 도로 표지판에 발견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디르밀이라는 [[터키]] 마을이 고대의 트리밀리 즉 뤼키아로리키아로 판명되었다.
 
2세기의 대화록 에로테스는 뤼키아가리키아가 그들의 기념비보다는 그들의 이전 영광을 포함하므로 역사가 흥미롭다고 하였지만 뤼키아의리키아의 유적에서 많은 유물들이 특히 그들 특유의 절벽 측면의 바위를 깍아만든깎아만든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뤼키아는리키아는 여신 [[레토]]와 그녀의 쌍둥이 아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숭배의 중심이었다
 
== 뤼키아리키아 연맹 ==
 
뤼키아리키아 연맹(코이논)은 [[기원전 168년]]에 민주주의 원칙으로 결성되었다. 그것은 23개의 알려진 도시국가를 구성원으로 한다.
 
뤼키아는리키아는 [[기원전 188년]] 아파메아의 평화에서부터 [[로도스]]의 지배하에 있다가 [[마케도니아 전쟁|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결과 로마에 의해 독립하게 되었다. 이들 도시 국가들은 연방 형태의 정부로 참여되었다. 그것은 더 큰 나라에 대해 정치적인 자원을 공유하였다. “뤼키아르크”는“리키아르크”는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는데 매해 가을 다른 도시에서 소집된다. 해당 도시에 각 구성원은 도시 크기에 따라 1명에서 3명의 대표를 상원 즉 불류테리온에 보냈다. 연맹의 주요 도시는 [[크산토스]], [[파타라]], [[피나라]], [[올륌포스올림포스]], [[뮈라]]와 [[틀로스]]가 있었는데 파타라가 수도였다. [[파셀리스]]는 나중에 연맹에 참여하였다. 연맹은 [[46년|서기 46년]] 로마 속주가 된 후에도 계속 작동하였다. 뤼키아는리키아는 4세기에 연방이 사라졌다. 그 때 [[비잔티움 제국]]에 의해 병합되었다.
 
 
28번째 줄:
{{아나톨리아의 역사적 영역}}
 
[[분류:뤼키아| 리키아]]
[[분류:아나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