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라 요시카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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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이치조다니 ===
 
덴쇼 원년(1573년) 8월 8일 노부나가는 3만의 대군을 이끌고 오미를 침공한다. 이에 대해 요시카게도 아사쿠라 전군을 이끌고 출진하려 하지만, 아사쿠라가 중신으로 있는 아사쿠라 가게아키라, [[우오즈미 가게타카]] 등이 요시카게의 출진명령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가신들에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 이 때문에 요시카게는 [[야마자키 요시이에]], [[가와이 무네키요]](河井宗清) 등을 소집해, 2만의 군세를 이끌고 출진한다.
 
8월 12일 노부나가는 폭풍우를 이용, 스스로 군을 이끌고 아사쿠라측 토리데(砦; 소규모 성, 요새)로 있는 오타케토리데를오타케토리데(大嶽砦)를 공격한다. 노부나가의 전격적인 기습에 의해 아사쿠라 군은 대패하고 토리데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8월 13일 요우노야마토리데가요우노야마토리데(丁野山砦)가 함락되고, 요시카게는 [[아자이 나가마사와나가마사]]와 연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요시카게는 에치젠으로 철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요시카게의 퇴각을 예측했기 때문에, 아사쿠라 군은 오다 군의 추격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사쿠라 군은 다베야마에서다베야마(田部山)에서 대패하고, 야나세로야나세(柳瀬)로 도주했다. 오다 군의 끝없는 추격에 다시 도네자카에서도네자카(刀根坂)에서 격돌한다. 그러나 병력차와 오다 군의 강력함에 아사쿠라 군은 싸우지도 못한 채 패주하고, 아사쿠라 자신도 목숨만 겨우 건저서 [[히키다 성]](疋壇城)으로 도망쳤지만, [[사이토 다쓰오키]](斎藤龍興), 야마자키 요시이에, [[야마자키 요시노부]](山崎吉延) 등 유력 무장 다수를 잃는다.
 
요시카게는 히키다 성에서 이치조다니를 목표로 도주하지만, 그 사이에도 장병들은 차례차례 도망을 쳐 남은 사람이라곤 [[도리이 가게치카]](鳥居景近)와 [[다카하시 가게나리]](高橋景業) 등 측근 10여 명밖에 없었다. 8월 15일, 요시카게는 이치조다니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사쿠라 군의 패배를 안 이치조다니의 장병들은 대부분 도망친다. 요시카게가 출전하고 싶어도 [[아사쿠라 가게아키라]]이외에는 출진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8월 16일 요시카게는 가게아키라의 권유에 따라 이치조다니를 버리고, 도운지로도운지(東雲寺)로 간다. 8월 17일 헤센지에 원군을 요청하지만, 이미 노부나가의 부탁을 받았던 헤센지의헤센지(平泉寺)의 공격을 받는다. 8월 19일 겐쇼지로겐쇼지(賢松寺)로 도망친다.
 
한편 8월 18일 노부나가가 이끄는 오다 군은 [[시바다 가쓰이에]](柴田勝家)를 선봉으로 이치조다니를 공격하고, 손에 닿는데로 방화를 한다. 이 화재는 3일낮 3일밤 계속된다. 이것으로 아사쿠라가 100년의 영화도 한 줌의 재가 된 것이다.
 
=== 말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