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노키 마사시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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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무 2년([[1335년]]) [[나카센다이의 난]](中先代の乱)이 일어나자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난을 진압하러 출정하였고, 곧 [[고다이고 천황]]을 이반하였다. 이 일로 조정은 [[닛타 요시사다]]에게 [[아시카가 다카우지]] 토벌을 명하였고, 요시사다는 [[하코네·다케노시타 전투]](箱根・竹ノ下の戦い)에서 패배하여 아시카가 군의 교토 진격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다행히 [[기타바타케 아키이에]](北畠顕家)가 [[오슈]]로부터 교토로 진군해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와 함께 아시카가 군을 교토에서 축출하였다.
 
[[엔겐]] 원년/겐무 3년([[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규슈]]에서 세를 수습하여 다시금 교토로 진격해 오자,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고다이고 천황]]에 [[닛타 요시사다]]를 내쳐 다카우지와의 화친을 전언하였다. 하지만, 용인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천황에게 교토에서의 철군을 진언하지만, 이마저도 묵살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닛타 요시사다]]의 휘하 장수로 출진하여 [[미나토가와 강 전투]]에서 [[아시카가 다다요시]](足利直義)의 군에 패해 자결하였다. 이때 동생 [[구스노키 마사스에]](楠木正季)와 함께 자결하였다고 한다.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자식으로는 '''쇼난 공'''(小楠公)인 [[구스노키 마사쓰라]](楠木正行)를 필두로 [[구스노키 마사토키]](楠木正時), [[구스노키 마사노리]](楠木正儀)가 있으며, 이들도 아버지와 같이 남조측에 가담하였다.
 
마사시게의 처는 남편과 장남 마사쓰라가 죽은 후, 전란인 와중에 가와치를 벗어나 [[미노노쿠니|미노 국]] [[이지라 촌]] (현 [[야마가타 시 (기후 현)|야마가타 시]]) 간나비 신사에 숨어 살았다. 그녀의 묘는 [[이지라 호]]에 있는 [[간나미지]] 경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