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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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치닫는 로마===
그러나 삼두 정치체제는 그 종말로 다가갔다. 기원전 54년 폼페이우스의 아내인 율리아가 아이를 낳다가 죽음으로서죽음으로써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없어졌고 크라수스는 파르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가 전사하고 만 것이다. 또한 로마 민중들사이에서 폼페이우스 보다 카이사르가 더 유능한 장군으로 여겨졌다. 카이사르는 다시 한 번 혼인 동맹을 맺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폼페이우스는 거절하고 대신 [[기원전 52년]] 카이사르의 주요 정적인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문과 결합하여 원로원파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때부터 원로원파는 카이사르보다는 폼페이우스가 덜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해 클로디우스의 암살과 원로원 건물이 파괴되자 원로원파는 폼페이우스에게 질서를 회복하라고 요청했고 폼페이우스는 신속한 군사행동으로 질서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폼페이우스를 의심스러워하는 원로원은 그에게 독재관의 지위 대신 공동집정관이 없는 단독집정관직을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