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송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psp (토론 | 기여)
잔글 →‎그랑송 전투: 줄일려고 → 줄이려고
35번째 줄:
스위스는 수비대가 이러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포위가 풀리기를 바라며 계속 병력을 모았다. 이 원군은 20,000명을 거의 헤아려 아마 부르고뉴 군대를 약간 넘어설 수 있을 정도였다. 1476년 3월 2일 스위스군은 [[콩시스]](Concise)라는 마을 근교에서 샤를의 부대에 접근했다. 스위스군은 3부대로 나눠 진군했고, 전위(vanguard)가 부르고뉴 군과 접촉했다. 정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샤를은 스위스군의 규모와 진형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스위스군의 전위만을 원군의 전부라고 오해했다.
 
[[슈비츠]](Schwyz), [[베른]], [[졸로투른]](Solothurn) 지역의 병사로 편성된 전위부대는 얼마안가 전투가 일어날 것을 알아차리고 꿇어앉아 기도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들이 "우리들의 주여", "[[아베 마리아]]" 라고 3번 외치는 것을 부르고뉴 군의 일부가 항복의 의사표시로 오해했다. 어쨌든 샤를은 공격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때 스위스군은 "너희에겐 자비는 내려 줄 수 없다.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라고 외치면서 맹렬히 돌격했다. 부르고뉴 군의 기사는 곧 스위스의 전위를 포위했으나 샤를은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 소규모 전투 후 샤를은 재돌격 하기 전에 포격으로 스위스군의 병력을 줄일려고줄이려고 기병부대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런데 그때 숲속을 비밀리에 접근하던 스위스군 본대가 모습을 들어냈다. 이미 후퇴를 개시하던 부르고뉴 군은 아까보다 규모가 더 큰 스위스군 제2부대의 출현에 혼란에 빠졌다. 정연한 후퇴는 패주로 탈바꿈하고 부르고뉴 군은 예측을 뛰어넘어 도망쳤다. 샤를은 혼란을 일으킨 군대 속에서 멈추라고 큰 목소리로 명령하며, 도망치는 병사를 검으로 내려쳤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패주를 멈추지 못하고 샤를도 도망칠 수 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