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기갑사단 (독일 국방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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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계 - 226대
 
[[1940년]] [[프랑스 전투]]에 참가했고, 그후 동쪽으로 이동하여 1940년의 남은 기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1941년]] 6월,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하여 [[독일 중부집단군|중부집단군]] 예하에서 첫번째첫 번째 전투를 치렀으며, [[모스크바 전투]]와 [[르제프-비아즈마 돌출부 전투]]에 참가했다. 6 기갑사단은 [[독일 4 기갑집단군|4 기갑집단군]](사령관 : [[에리히 회프너]] 상급대장) 예하 [[한스 게오르그 라인하르트]] 기갑대장의 41 차량화군단 소속으로 동프로이센에서 출발하여 [[리투아니아]]쪽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전쟁 2일째인 [[6월 23일]]에 [[라세냐이아 전투|라세냐이아]]에서 6 기갑사단은 소련군의 최신예 중(重)전차인 [[KV-1]]을 장비한 [[소련군 2 전차사단]]에 만 하루를 진격을 정지당했다. 6 기갑사단이 보유한 독일제 [[4호전차]]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 사]]제 [[35(t) 경전차]]로는 KV-1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사단이 보유한 [[대전차포]]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뒤에 닥칠 [[T-34 충격]]과 더불어 소련군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사건이었지만, 승장구하던 독소전 초기 독일군은 전투가 마무리된 후 41군단은 [[드비나 강]]까지 3주 동안 750Km를 주파하는 동안 잊혀졌다.
 
1942년 5월, 사단은 손실을 보충하고자 프랑스로 철수하였다. 그해말에 다시 러시아 전선으로 이동한 6 기갑사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독일 6군|6군]] 구출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그 후 사단은 [[하르코프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했고,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 후퇴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사단은 [[1945년]] 초 [[부다페스트]] 구원 작전에 투입된 후 [[오스트리아]]로 밀려났고,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소련군에 항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