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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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는 영국 [[요크셔]]의 보로브리지홀(Boroubridge Hall)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은 [[캔터베리 대주교]], [[선교사]]들이 배출된 전통적인 [[성공회]] 집안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버드 신부(Rev. Edward Bird)는 [[영국 성공회]] [[사제]](Church of England Priest)이며, 이사벨라가 어렸을 때 교구의 인사발령에 따라, 여러 지역으로 이사했었다. [[1848년]]에 성공회 성 토마스 주교좌 성당에서 교구 사제(Vicar)로 사목(목회)하던 에드워드 버드 신부는 교우들과 사목방식으로 갈등을 겪었고, 결국 가족들과 이사해야 했다.
 
이사벨라는 딱딱한 의자에 앉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서 평생 [[감기]]나 다른 병에 걸리고는 했었다. 당연히 학과지식은 학교 교사가 아닌 가정교사에게 배웠다. 여행을 좋아한 그녀는 자기가 가장하고 싶었던 여행을 못할 때 몸이 아팠다고 한다. [[1854년]]에 아버지로부터 100[[영국 파운드|파운드]]를 받아서 [[미국]]에 있는 친척을 보러 가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100파운드를 다 쓸 때까지는 있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배려 덕분에 미국에서 마음껏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여행을 이사벨라가 자기의 첫번째첫 번째 책 《미국에 간 영국 여인》(''The Englishwoman in America'')을 익명으로 저술했다. 1년 후에 [[캐나다]]로 간 다음에 [[스코틀랜드]]도 여행했었지만 몸이 아팠기 때문에, 모친이 [[1868년]]에 돌아가신 다음에 이사벨라는 여동생인 헨리에타와 같이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또 여행을 하기로 했다. 헨리에타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행을 하면서 [[책]] 쓰기로 돈 벌었던 이사벨라와는 생활방식이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여행을 하면서 동생으로 편지를 자주 보냈으며, 이 편지들을 편집해서 책을 만든 바도 있었다.
 
==여행==
[[그림:Korea and Her Neighbours.png|thumb|right|250px|left|''《[[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중의 한 쪽.살림에서 출판한 한국어판에서는 이 그림을 표지디자인에 사용했으며, 본문에도 들어있다.]]
[[1872년]]에 이사벨라는 처음으로 낯선 해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갔지만 마음에 안 들어서 [[하와이 제도|하와이]](당시 샌드위치 제도)로 갔다. 아름다운 자연과 원주민들의 자유분방함을 보고 하와이를 좋아하게 된 이사벨라는 두번째두 번째 책을 하와이에 대해 쓰기로 했다(결국 [[1875년]]에 출판되었다). 그 다음 미국의 [[콜로라도 주]](당시 가장 최근 병합된 주)로 갔다. 공기가 좋은 콜로라도의 로키 산맥에서 1200 킬로미터 이상의 여행을 마친 다음에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로키 산맥 속의 숙녀 생활》(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s'')을 출판하였다.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 몸이 또 다시 나빠졌기 때문에 여행을 또 시작하기로 했다. [[일본]], [[중국]], [[베트남]]과 [[싱가포르]]을 여행했다. [[1880년]] 쯤에 결혼한 존 비숍이라는 의사와 결혼하기로 했지만 [[1886년]]에 남편이 단독에 걸려서 죽었고, 이사벨라는 60세 이상임에 불구하고 [[의학]]을 배우고 [[성공회]] [[선교사]]가 되기로 해서 [[인도]]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