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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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푸의 현성 북문에서 공림의 정문까지는 1,266m 길이의 ‘임도로’(林道路) 불리는 울창한 가로수가 있는 직선로 길이 있다. 현성 출구에는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 [[안회]]의 묘인 안묘가 있고, 가로수길 중간에는 명대에 지어진 ‘만고장춘’(萬万長春)이라고 새겨진 문과 같은 석방이 길을 또 잇고 있다. 공림의 정문인 이림문(二林門)을 빠져 나가면 성벽에 둘러싸인 광대한 묘역, 공림으로 들어가고, 향전(享殿)이라고 하는 황색 기와의 궁전풍의 배전에 도착한다. 공자의 무덤은 이곳 뒤에 있다.
== 역사 ==
공자의 능묘는 [[원나라]] 대에 사수하안(泗水河岸)에 설치되어 예물을 봉납하기 위한 벽돌의 기단이 존재했다. 현재의 공자의 무덤은 반구형의 언덕이며, 전에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고 조각된 묘비가 서 있었다. [[문화대혁명]] 시대에 [[홍위병]]이 파괴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때이때 홍위병은 공자의 능묘에도 침입했지만, 내부에 인골 등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공자의 사후, 공자의 자손들의 무덤이나 공자의 비석 등이 주위에 추가되었다. 공자의 자손은 ‘연성공’(衍聖公)의 칭호가 수여되었고 [[건륭제]]의 딸 등 황족 공주를 아내로서 맞이했기 때문에, 무덤의 상당수는 고위 고관의 권위의 상징이 되어 있다. 묘비는 한대 이후, 송,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며 3,600개의 묘비가 남아 있다. [[1333년]](지순 4년)에는 공림 주변 성벽 및 문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후 공림에 13회에 걸친 복구와 확장공사가 대해 진행되었다. 18세기 말기에는 높이 4m, 성벽 길이는 5km 이상에 이르러며, 약 2㎢의 범위를 둘러싸게 되었다. 이 범위에는 200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묻힌 10만명 이상의 공자의 자손들의 무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주대에서부터 가장 새로운 것은 제 76대와 제 78대 자손의 것이다. 1만개 이상의 묘와 묘비들이 오래된 고송들과 어울리며 묘소 전체가 숲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