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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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되어 있는 동안 장제스는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와 면담을 가졌고 장제스의 부인인 [[쑹메이링]]을 비롯한 난징정부의 대표단이 시안으로 날아와 막후협상을 벌였다. 대다수 동북군 장교들은 장제스를 '인민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산당 및 다른 온건파들은 장제스가 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10년간의 국공내전이 종식되고 위신이 깍이지 않은 채 난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제스의 실각이나 죽음은 또 다른 내전의 빌미가 되고 결국 일본만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동북군의 젊은 청년장교단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는 8개 요구항에 대한 문서 서명확인없이 [[12월 25일]] 석방되었다. 반란군, 공산당과 난징 정부 대표들 사이에 정확하게 어떠한 합의가 도출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장제스는 더 이상 내전이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보장했고 장쉐량이 제공한 비행기 편으로 난징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이 때이때 장제스의 체면은 손상하지 않기 위해 장쉐량 자신도 함께 난징으로 가서 스스로 반란에 대한 처벌을 기다렸다.
 
==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