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의 반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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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bespierre.jpg|thumb|230px|살해된 로베스피에르]]
'''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 끝에 결국 살해당한 사건이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로 민심이 너무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고 존재의 제전' 건립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런 정치색 짙은 행사로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1794년]] 7월 초부터 행동은 개시되었다. 사람들은 다들 언제 로베스피에르가 자신을 죽일까 걱정했다.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가 공회에 나타나 반혁명파를 숙청하겠다고 말하자 의원들은 ''‘반혁명파가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라고 저항했다. 다음날, 즉 [[7월 27일]] 반로베스피에르 파는 행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의 공포 정치는 민심을 그에게서 떠나보냈던 것이다.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도구인 [[단두대]]에 올라가 처형당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혁명 주도권은 [[부르주아]]가 쥐게 되었고, [[나폴레옹]] 등장까지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은 [[프랑스 대혁명]] 이 후 권력을 잡게 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국가를 억압하는 공포정치 끝에 결국 살해당한 사건이다.
 
== 원인 ==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로 민심이 너무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고 존재의 제전' 건립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런 정치색 짙은 행사로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1794년]] 7월 초부터 행동은 개시되었고 혁명파 정치인들은 이 사건으로 강경한 로베스피에르가 자신들을 제거할 것을 두려워했다.
 
== 사건 전개와 영향 ==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가 공회에 나타나 반혁명파를 숙청하겠다고 말하자 의원들은 ''‘반혁명파가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라고 저항했다. 다음날, 즉 [[7월 27일]] 반로베스피에르 파(대부분이 지롱드 파)는 행동을 개시하여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해 처형하기로 했다. 로베스피에르와 정치적 동료였던 이들 조차도 그를 배신했고 이 배신자들마저 반로베스피에르 파에 의해 숙청된다. 공포정치로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했으나 오히려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로베스 피에르는 [[7월 28일]], 자신이 혁명 정신과 국가 안보를 운운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던 도구인 [[기요틴]]에 올라가 처형당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혁명 주도권은 [[부르주아]] 계층, 지롱드 파의 온건파들이 쥐게 되었고, [[총재 정부]], [[통령 정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까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분류:프랑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