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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독립과 그 후의 역대 군주에 대한 중국 측의 안남 국왕(한나라 때는 안남도통사) 책봉 등에 베트남 여러 왕조가 사용하던 지리적 명칭이었다. 역대 베트남 왕조도 [[중국]]이나 [[일본]] 등에 대해서는 안남이라는 국호를 이용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식민
[[1883년]], [[후에]](순화)의 완조 정부는, 프랑스의 군사적 압력 아래 계미조약([[제1차 후에조약]], 알만 조약)을 체결해, 안남이 프랑스 보호령인 것을 승인 당했다. 이 조약에는 남부의 빈트안(평순)을 코친차이나 식민지에 할양해, 북부의 타인호아(청화), 게안(예안), 하틴(하정)의 3성을 통킹에 편입하고, 안남 지방은 관세, 토목을 제외하고 응우옌 왕조의 황제에 의해 통치되며, 수도 [[후에]]에는 프랑스 대사관을 둘 것, [[통킹]]은 보호령으로서 실질적으로 프랑스의
다음 해 [[1884년]]에 맺어진 갑신조약([[제2차 후에조약]], 파트노톨 조약)에는 프랑스의 대표인 총독이 안남국의 외교권을 총괄하고, 후에 황궁에 프랑스 수비대를 상주시키는 것 등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프랑스의 베트남에 대한 노골적인 침략은 베트남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개입을 불러 [[청불 전쟁]](1884년 - 1885년)이 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텐진조약]]에 의해서 청나라는 결국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 국내에서는 각지에 근왕운동이 발생해, 대 프랑스 저항운동이 전개되지만, 후에의 왕궁을 도피하여 산중에서 근왕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함의제가 [[1888년]], 프랑스군에 체포되면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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