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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1897년]]에 [[궁내부]] 영선사 주사에 임명되어 대궐에서 소용되는 물품의 구입을 담당하였고, 전주진위대의 향관을 겸하여 군량 및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1902년]]에는 궁내부 내장원의 전라도 검세관에 임명되어 탁지부에서 내장원에 외획한 결세전을 징수하여 이를 사고팔아 서울로 운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토지를 매입하거나 사채업에 이용하였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1905년]] 이후에는 농장형태의 농업 경영을 통해 [[전라도]]의 부호로 성장하였다.
 
[[1908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에 [[전라북도]] 대표 2명 중 한사람으로 임명되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보였다. [[1918년]]에 일본이 시베리아로 출병했을 때 벼 4천석을4천 석을 군용미로 헌납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6등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전북의 친일단체 전북자성회의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재위했을 때에는 해마다 5만 냥 상당의 부채 3만 자루를 궁으로 보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ref>황현, 《매천야록》</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