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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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족'''({{llang|de|Germanen}})은 고대 [[유럽]]의 게르만계 민족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게르만인들은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언들을 사용했으며 [[게르만 신화|공통된 신화]]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켈트족에 비해 철기보급이 떨어지고 무기의 시대 차이뿐만 아닌 전반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며 약세였고 켈트족의 로마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계속 그 상태였으며 로마와 인접해있던 프랑크족과 같은 게르만족은 로마의 비호뿐만 아닌 용병차출과 교역 등 부와 권력을 많이 쌓고 로마화가 일부 되어있었으며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가장 성장하게 되는 주역들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아 원정을 계획했으나 그의 전쟁과정은 갈리아 전쟁때보다 더 길었으며 폭발적인 진행이 이어가지 않았고 그만큼 세금이 많이 지출되며 전쟁의 종료를 기념할 성대한 개선식을 수십 년이 흘러도 못하며 갈리아 전쟁 때와 비교되어 많은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외부에선 [[9년]]에 게르만족 출신으로써 로마군인에 복무하며 로마에 대한 전반적이고 특히 군사적인 지식을 쌓아두었던 [[아르미니우스]]는 무능하고 군사적 재능마저도 없던 [[바루스]]의 점령군을 [[토이토부르크 숲]]으로 유인해 대패시켰다. 이후에도 게르만 탈환은 계속되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치세말년 골치아픈 게르만으로 인해 라인강 도나우강과 주요방어거점을 중심으로 국경정책을 짓고 방어적인 태도로써 변모하며 길디긴 리메스와 방어군을 배치하고 방어전으로 변이했다 그이후에도 이런 정책에서 벗어나 정복을 계속했으나 무능과 게르마니쿠스와 같은 명장과 리더로써 전쟁을 계속 수행할 자들이 죽는 악재가 겹치고 사실상 국지전이나 소규모의 전투만 변변히 일어나고 로마가 대대적인 원정군을 개편하여 침공하지 않은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로마에겐 게르마니아 정복사업에 본국사정으로 잠깐동안 지체가 됐을뿐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가 많이 부족한 현황이였지만현황이었지만 잊혀졌던 많은 게르만 전쟁도 밝혀지며 아우구스투스의 패배이후에도 기록물은 아직 별로 없으나 여러번 게르마니아에 전장터와 수많은 군사무기 시대별 황제가 찍힌 주화 의식주가 발견되고 현재에도 발굴이 진척되며 토이토부르크 숲 패배이후도 전쟁은 계속되었음을 알려준다. 혼란스러운 군인황제시대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게르만에 대한 군사적 원정은 계속되었다.
 
== 특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