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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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테리는 주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웸블리 경기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둬 [[FA컵]]을 들어올렸고, [[웸블리 경기장]]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에서 헤딩골로 경기장 개장 이후 치뤄진 국가대항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7-08시즌 테리와 [[첼시 FC]]는 [[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에 패하였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내주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테리가 승부차기를 실축한 끝에 패배해 도합 3개의 트로피를 눈 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후 팀 동료인 [[프랭크 램퍼드]]는 테리를 '남자중의 남자(a man's man)'로 묘사하였다.
 
==선수클럽 경력==
===청소년 경력===
테리는 [[런던]] 동부의 [[바킹]]에서 태어났고 [[이스트버리 종합중학교]]을 다녔다. 테리는 [[런던]]에 위치한 [[선데이 리그]] 소속의 [[센랩 FC]]에서 축구 선수로서 처음 뛰었다. 센랩은 5~17세 사이의 어린 선수들을 15개 팀으로 나누어 운영하는데, 현재 [[프리미어리그]] 소속의 [[솔 캠벨]], [[저메인 데포]], [[보비 자모라]], [[레들리 킹]], [[제이로이드 새뮤얼]]등 많은 [[잉글랜드]] 축구 스타를 양성하였다. 테리는 10살 때 [[밀월 FC]]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에서 유스 테스트를 받았고, 뛰어난 유스 시스템을 보유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과 계약하였다. 그 후 첼시의 유스 시스템에 14살에 참가해 유스팀과 리저브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센터백 포지션의 선수가 부족하여 센터백으로 옮긴 후 지금까지 센터백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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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0년]] [[1월 30일]] 같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첼시 FC]]에서 함께 뛰기도 했던 [[웨인 브리지]]의 애인인 [[바네사 페론첼]]과 불륜관계에 있음이 들통나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웨인 브리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 브리지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프리미어리그 2009-10]]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경기에 웨인 브리지와 악수를 하겠다고 하여 많은 비난을 샀다. 이는 웨인 브리지가 악수를 거부하면서 존 테리의 망신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경력===
테리는 [[스티브 매클래런]] 감독 하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의 주장이었으며, [[2003년 6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2003년]] [[8월 20일]] 테리는 [[입스위치]]의 [[포트먼 로드]]에서 열린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에서 풀타임을 소화하였고, 잉글랜드는 3-1로 승리하였다. 그의 주된 수비 파트너는 [[리오 퍼디낸드]]이다. 그는 [[UEFA 유로 2004]]에 출전하였으며, 당시 잉글랜드 감독이었던 [[스벤 예란 에릭손]]은 [[솔 캠벨]]을 제치고 테리를 팀의 제 1 센터백으로 낙점하였다.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와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테리는 [[마이클 오언]]이 교체되어 나가면서 잉글랜드의 주장 완장를 차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