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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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드사이]]가 팀을 떠난 이후 [[첼시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조제 모리뉴]]는 테리를 클럽의 주장으로 선택하였고, 이러한 선택은 2004-05시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소 실점과 최다 무실점 경기,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첼시 FC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전 [[FC 포르투]]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호흡을 맞추며 첼시 FC가 [[유럽]] 제일의 수비 라인을 형성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활약상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득점을 포함하여 총 8골을 기록한 것으로 인하여 테리는 '동료들이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 시즌에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 9월]] 그는 [[FIFPro 어워드]]에서 40여개국의 프로 선수들에 의해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첼시 FC는 2005-06시즌 승점 91점을 획득하였고, [[2006년]] [[4월 29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하게 되었다.
 
====최근2006-07 시즌====
[[2006년]] [[10월 14일]] [[레딩 FC]]와의 경기에서 테리는 [[첼시 FC]]의 기존 키퍼였던 [[페트르 체흐]]와 [[카를로 쿠디치니]]가 이 게임에서 부상으로 교체됨에 따라 골키퍼 자리를 넘겨 받게 되었으며, 그는 팀의 제 3 골키퍼인 [[엔리케 일라리우]]가 입는 40번 유니폼을 입고 골문을 지켰다. 하지만 남은 경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테리는 선방을 할 상황을 갖지 않았고, 첼시 FC는 한 골을 지켜 승리하여 테리는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였다. [[2006년]] [[11월 5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테리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첼시 FC가 패배한 이후 처음으로 2장의 [[옐로카드]]를 받았고, 그가 첼시 FC의 선수로 뛴 이후 처음으로 퇴장을 당하였다. 경기가 끝난 이후 테리는 경기 주심이었던 [[그래엄 폴]]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에 부당함을 항의하였고, [[2007년]] [[1월 10일]] 테리는 그의 마음을 바꾸고 죄를 인정한 후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부적절한 행동으로 £10,000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6-07시즌에 그의 등 부상 재발로 여러 경기를 놓치게 되었다. 후에 [[2006년]] [[12월 26일]] [[레딩 FC]]와 비긴 경기에서 [[조제 모리뉴]]는 그의 주장이 문제를 해결키 위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빠진 경기에서 첼시는 6골을 허용했다. [[12월 28일]]에 첼시는 언론에 테리가 등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부골화된 요추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을 없애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록 그는 [[위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에서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테리가 만약 등부상이 재발된다면 다시 한번 경장하게 될 것이다. 그는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2007년]] [[2월 3일]] 경기에서 복귀하고자 한다. 그는 거의 3달 전인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에서 첫 번째 풀타임을 기록했고 첼시의 충성스러운 팬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비록 [[FC 포르투]]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서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는 또 다른 부상에 시달렸다. 이번엔 발목부상이었다. 이 때문에 [[2007년]] [[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아스널 FC]]를 상대로 한 결승에 결장할 계획되었지만 며칠 내에 부상에서 복귀했고 결승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경기 후반 도중에 공격코너에서 그는 공을 향에 다이빙 헤딩을 했고 아스널 FC의 [[아부 디아비]]가 공을 걷어내는 시도를 했고 테리의 얼굴을 찼다. 테리는 수분 동안 정신을 잃었고 그의 혀를 거의 삼킬뻔했다. 이때 [[안드리 솁첸코]]가 그의 기도를 확보해 주었고 옆에 있던 아스널 FC 담당의에 의해 응급치료를 받고 경기장에서 들것에 실려나갔고 즉시 [[웨일스 대학병원]]로 후송되었고 그는 여기서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는 같은 날 스스로 퇴원했으며 [[밀레니엄 경기장]]에 가서 그의 팀의 2-1 승리를 축하했다. 그는 오직 후반전을 치르기 위해 경기장을 올라갔던 것만 기억했고 그가 부상당하기 10분전부터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고 후, 테리는 그의 목숨을 구해준 아스널 FC의 팀닥터인 [[게리 루인]]에게 감사해 했다. 게리 루인는 테리가 그의 숨통을 혀로 막은 후 그를 돕기 위해 처음으로 달려간 의사 이다. 벤치에서 2주를 보낸후 그는 3월 [[블랙번 로버스 FC]]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첼시를 올려놓았고 4년간 세 번째로 첼시가 4개의 경기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게 했다. [[2007년]] [[FA컵]]에서 [[웸블리 경기장]] 첫 번째 결승에서 첼시의 주장으로 나섰다.
 
====2007-08 시즌====
2006-07시즌 직전에 받은 새로운 재계약에 대해 동의하는 것을 실패하였지만 테리는 첼시를 떠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7월 말에 그는 기본적인 주급은 £131,000에서 £135,000이고 이 주급은 그를 이 당시에 최고로 높은 주급을 받는 선수로 만들어 준 새로운 5년 재계약에 사인하였다. 8월에 [[프랭크 램퍼드]]는 테리의 주급을 능가하는 주급 £151,000에 재계약해 [[프리미어리그]] 최고 주급자가 되었다. [[2007년]] [[12월 16일]]에 [[아스널 FC]]과의 경기에서 공을 걷어내는 테리의 발을 [[에마누엘 에부에]]가 지나갔고 테리는 그의 발에 3개의 불어진 뼈로 고통스러워 했었다. 그는 적어도 3달 이상 결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빠른 회복으로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2008 리그컵 결승에서 주장직을 수행하게 되었고 첼시는 이 경기에서 2-1패배를 당했다. [[2008년]] [[5월 11일]]에 [[볼턴 원더러스 FC]]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와 충돌했고 부분탈구된 팔꿈치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부상은 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선제골을 먹히고 [[프랭크 램퍼드]]의 동점골로 인해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다. 체흐에 의해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첼시가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만약 테리가 골을 넣었다며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널티킥을 실축하였다. 차는 순간 그의 발 중심축이 미끄러져버려 골을 넣치 못했고 이후 [[니콜라 아넬카]]마자 실축하면서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6-5로 패배하였고 테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는 빗물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할 수 없었다. 첼시를 결승전까지 이끌고 온 사람은 바로 테리였기 때문이다. 《존 테리의 눈물》 사건은 2007~08시즌 EPL 결산 10대 순간 1위에 선정되었다.
 
====2008-09 시즌====
[[2008년]] [[8월 28일]]에 테리는 [[모나코]]에서 열린 조별그룹대진에서 [[UEFA]]로부터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였고 [[프랭크 램퍼드]]와 [[페트르 체흐]]도 각각의 포지션 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9월 13일]]에 테리는 [[맨체스터 시티 FC]]의 [[조 (축구 선수)|조]]에게 럭비 태클을 가해 그의 생에 첫 즉각퇴장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후에 항소해 결정을 폐지하였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첼시에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그룹A [[AS 로마]]와의 홈경기에서 같은 중요한 골을 넣는다. 하지만 첼시는 이 원정경기에서 3-1로 패배하였다.
 
[[프랭크 램퍼드]], [[디디에 드로그바]], [[페트르 체흐]]와 함께 테리는 [[첼시 FC]]의 중추로 간주되며, 그는 첼시 주장으로서 [[데니스 와이즈]]보다 한 개 더 많은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클럽의 유스시스템을 경험한 선수로서 그는 첼시 팬들에게 특히 더 인기가 많다.
 
====2009-10 시즌====
[[2009년 7월]] [[맨체스터 시티 FC]]는 테리에서 세 번째 거래를 만들었지만 첼시의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는 테리가 첼시에 남을 거라 주장하였다. 존 테리는 그의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시즌 데뷔를 헐시티 상대로 했고 이 경기에서 첼시는 이겼다. [[2009년]] [[11월 8일]]에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이번 시즌 완벽한 홈경기 기록을 지키는 결정적인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1월 30일]] 같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첼시 FC]]에서 함께 뛰기도 했던 [[웨인 브리지]]의 애인인 [[바네사 페론첼]]과 불륜관계에 있음이 들통나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하여 웨인 브리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 브리지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프리미어리그 2009-10]]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경기에 웨인 브리지와 악수를 하겠다고 하여 많은 비난을 샀다.샀고, 이는 웨인 브리지가 악수를 거부하면서 존 테리의 망신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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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lang|en|"팀의 주장을 선정하는 것은 감독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다. 나는 존 테리를 선택한 것이 옳은 결경이라 확신한다. 나는 그가 역대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들 중 최고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 확신한다."|}}}}
 
테리는 잉글랜드 주장으로서의 데뷔 경기인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경기의 첫 골이자 매클래런이 잉글랜드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팀의 첫 골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새로운 주장 완장에 키스하는 골 세레모니를 하였다. 하지만 테리가 주장으로 활약하는 동안 잉글랜드는 [[UEFA 유로 2008]]에 지역예선 탈락하였고, [[1994년 FIFA 월드컵]] 이후 첫 메이저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지역예선이 열라는 도중, 테리는 "잉글랜드가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면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 것을 인정하였다하였다.
 
[[2007년]] [[7월 1일]] 테리는 성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로는 처음으로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데이비드 베컴]]이 프리킥 상황에서 올린 크로스를 박스 안에서 헤딩해 골을 넣었으며, 그의 골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 1-1로 비겼다. 약 1년 후인 [[2008년]] [[5월 28일]]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과의 경기에서 그는 다시 한번 데이비드 베컴이 프리킥 상황에서 올린 크로스를 비슷하게 헤딩골로 연결하였고, 잉글랜드는 1-0 승리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