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성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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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 秋==
 
추(秋, Chu, 사성음 Qiu)씨는 중국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대부(大夫) 중손추(仲孫湫)의 아들 추호(湫胡)의 추(湫)를 추(秋)로 바꾸어 사용하면서 생겨난 성씨이다성씨로 전한다. 한국 추씨는 송나라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秋輅)이 고려 인종 때 함흥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성씨순위 64위 5만4천명이다. 인물로는 국회의원 [[추미애]](秋美愛), 야구선수 [[추신수]], 배우 [[추자연]], 운동선수 [[추성훈]](秋成勳)등이 있다.
 
'''[[추계 추씨]]'''의 시조는 송(宋)나라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秋輅)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가솔을 이끌고 함흥 연화도에 정착하여 한국 추(秋)씨의 시조가 되었다. 추씨구백년사(秋氏九百年史)에 의하면 추엽의 아들 '''추황'''(秋簧)이 1209년(희종 5년)에 성균시험에 장원하고 1213년(강종 3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부 상서, 예문관 대제학등을 지냈으며, 추황의 아들 '''추적'''(秋適)은 문장에 뛰어났고, 민부 상서, 예문관대제학등을 역임항 후 시랑 겸 국학 교수에 이르러 명심보감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이부시랑 '''추천일'''(秋天日)의 아들 '''추수경'''(秋水鏡)은 명나라에 건너가 무강자사에 재임중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병으로 이여송(李如松)의 부장이 되어 아들 '''추노'''(秋蘆), '''추추'''(秋萩) 형제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곽산(郭山), 동래(東萊)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전주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여 완산부원군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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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나라 추 鄒==
 
추(鄒, Chu, 사성음 Zou)씨는 중국 범양(중국 경조성 순의현)에서범양에서 계출된 성씨로 전한다. 우리 나라 추씨(鄒氏)는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때 비류부장을 지낸 '''[[추발소]]'''(鄒勃素), 후백제 견훤의 '''추허조'''(鄒許組)가 문헌에 전해지는데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추(鄒)씨들의 조상인지는 고증 할수없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209가구 64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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