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티아낙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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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트로이]]왕 [[프리아모스]]의 손자이고 [[트로이]]의 황태자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아들이었다. 이름의 뜻은 '도시의 왕', '도시의 어른'이라는 뜻인데 이는 아버지 [[헥토르]]가 혼자서 트로이를 지켰기 때문이라 한다.<ref>[[호메로스]]. ''[[일리아스]]'' 제6권 403행.</ref> 트로이 전쟁 전에 태어났다고 가정한다면 트로이 패망 당시 그의 나이는 11세가 된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스카만드로스'''인데 이는 트로이 시내를 흐르는 [[스카만드로스 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버지 [[헥토르]]가 살해당하고 [[트로이]]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트로이]] 성곽이 함락될 때 안드로마케는 아스티아낙스를 아버지인 헥토르의 무덤에 숨겼는데 결국 그리스 군에 발각되었다. 이 아이의 운명을 두고 그리스군들은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메넬라오스]]는 그 아이를 살려두려고 했으나 아이를 살려두면 트로이를 재건하여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오디세우스]]가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ref>[[에우리피데스]] ''트로이 여인들''</ref>
아버지 [[헥토르]]가 살해당하고 [[트로이]]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통상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 혹은 [[오딧세우스]], [[메넬라오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트로이 패망후 죽지 않고 [[안드로마케]] 등과 그리스로 끌려와 노예로 살다가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트로이를 재건했다고 한다. [[라신느]]는 아스티아낙스 생존설을 소재로 희극 [[앙드로마크]]를 지었다.
 
아버지 [[헥토르]]가 살해당하고 [[트로이]]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았다. 통상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 혹은 [[오딧세우스]], [[메넬라오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트로이 패망후 죽지 않고 [[안드로마케]] 등과 그리스로 끌려와 노예로 살다가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트로이를 재건했다고 한다. [[라신느]]는 아스티아낙스 생존설을 소재로 희극 [[앙드로마크]]를 지었다.
[[프랑크 족]]의 전설에 의하면 살아남아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와 [[카롤루스 대제]]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프랑크 족]]의 전설에 의하면 살아남아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와 [[카롤루스 대제]]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트로이의 어린아이===
[[트로이]] 성곽이 함락될 때 안드로마케는 아스티아낙스를 아버지인 헥토르의 무덤에 숨겼는데 결국 그리스 군에 발각되었다. 이 아이의 운명을 두고 그리스군들은 의견이 나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메넬라오스]]는 그 아이를 살려두려고 했으나 아이를 살려두면 트로이를 재건하여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오디세우스]]가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ref>[[에우리피데스]] ''트로이 여인들''</ref>
 
===트로이 살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