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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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로스트로포비치는 당시 서독에서의 첫 연주를 시작으로 작곡가들로부터의 많은 헌정곡을 시연했다. [[1968년]] 8월 21일, 소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Soviet State Symphony Orchestra)와 런던에서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오케스트라 데뷔 공연을 하던 중 그날 밤 소련의 체코 침공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스승인 [[쇼스타코비치]]는 구 소련의 [[공산주의]] 정치를 반대하다가 교수직을 박탈당하며, 로스트로포비치 역시 학교를 중퇴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다. 그는 소련시민권을 박탈당하여 여러 국가의 제안을 뿌리치고 모나코에서 비자만 발급받은 뒤 무국적자로써 미국으로미국에서 망명하였고활동하였다. 이후로 소련에서의 연주를 금지당했으나, [[1993년]] 러시아 헌법사건(1993 Constitutional Crisis)에서 서방 세계와 함께 [[옐친]] 대통령 측을 옹호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옐친 대통령이 그의 시민권회복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세계인의 삶을 선택했다.
 
[[2007년]]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크렘린]] 궁에 방문한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장암으로 사망했다. 모스크바 노보데비키(Novodevichy Cemetery)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