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독립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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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12월 21일 영국, 러시아, 프랑스의 대사들은 [[포로스 섬]]에 모여, 의정서를 준비하였다. 여기에서는 술탄의 칙령(firman)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군주가 다스리는 자치국을 그리스에 창설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정서에서 제시된 국경선은 [[아르타]]에서 [[볼로스]] 사이의 선이었으며, 카포디스트리아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생국 그리스는 [[키클라데스 제도]], [[스포라데스 제도]], [[사모스 섬]] 그리고 아마 [[크리티 섬]]밖에 얻지 못하였다. 포로스 의정서에 따라 1829년 3월 22일 런던 회의에서 의정서를 승인하였는데, 대사들의 제안 대부분이 수용되었으나 국경선이 당초 제안보다 남쪽으로 변경되었으며, 사모스와 크리티도 그리스령에서 빠졌다.<ref>Dimakis, ''The Great Powers and the Struggle of 1821'', 525</ref>
[[러시아-터키 전쟁 (1828~1829)|러시아의 압력]]으로 1829년 9월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이 체결되고 오스만 궁정은 결국 1827년 7월 6일의 [[런던 조약]]과 1829년 3월 22일 의정서의 조항에 동의하였다. 얼마 안되어 영국과 프랑스는 새 나라에 러시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제약하고자 그리스를 독립시키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ref>Bridge & Bullen, ''The Great Powers and the European States System'', 83<br />* Dimakis, ''The Great Powers and the Struggle of 1821'', 526–527</ref> 러시아는 이런 생각이
레오폴이 그리스 국왕을 고사하고, 프랑스에서는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에서 새 정부가 구성되기까지 신생 그리스 왕국의 국경선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지체되었다. 영국 외무 장관 [[팔머스턴|팔머스턴 경]]은 아르타-볼로스 국경선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크리티]]에 대한 비밀 각서에서 바이에른 전권대사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접촉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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