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시 (퉁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psp (토론 | 기여)
Demonick0310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30번째 줄:
본래 구려(句驪)의 터전으로 여겨지며, 이후 [[한 무제]]에 의해 설치된 [[현도군]]의 관할로 편입 되었으나, 현도군을 물리치고 [[고구려]]가 다시 이 지역을 회복하였다. 서기 3년에 [[고구려]]는 도성을 [[오녀산성]]에서 지안 시내의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다. [[209년]]에는 부근의 [[환도산성]]으로 천도하여, 427년에 [[평양성]]으로 천도할 때까지의 424년간 고구려의 수도로 당시의 유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당나라 조정은 [[가물주 도독부]]를 설치하였으며, 그 다음은 [[발해]],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의 통치를 받았다. [[청나라]] 조정이 들어서면서 [[장백산백두산]] 일대는 「용맥」이라는 신성한 땅으로 여겨져 금봉토로 지정되었고, 집안 지구도 출입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가 되면 점차 개발이 진행되어 [[1902년]](광서 28년)에 집안현이 설치되어 1965년에 집안현으로 개명하였고, 1988년에는 현급시로 승격해 현재에 이른다.
 
1994년 그 풍부한 역사 유적으로 인해 [[국가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