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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park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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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특수 기술관이나 문무의 하급 관리들은 소속 관아나 문무 고관에 예종(隸從)되어 기술과 실무를 담당했으므로 실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그 나름의 사회적 조직을 통해 행세를 할 수도 있었다. 역관이나 관상감원 등이 명에 파견되는 사신을 수행하여 무역의 이(利)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그 예이며, 또한 지방의 향리가 토착적인 세력을 이용하여 수령을 조종·농간하거나 전권(專權)·작폐(作弊)하는 일도 많았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신분상승한 양인이나 천민출신들과는 달리 계보 의식에 있어서 전통사회의 신분제를 거부하는 태도가 주목된다. 즉 계보를 조작하거나 사실 기존 계보를 사실대로 계승하는 중인들도 있었지만 족보 편찬에 더 이상 참여를 거부, 오늘 날 족보들을 보면 조선 말기 중인들의 후손 기록이 19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서 멈추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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