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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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d3d3d3|중립국}}]]
 
===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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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선에서 초기에 독일은 전선의 취약한 곳을 기갑부대로 붕괴시킨 후 적의 주력부대를 포위,섬멸하는 [[전격전]]의 개념을 도입하여 큰 효과를 본다.독일은 [[백색 작전]], [[황색 작전]], [[낫질 작전]], [[베저 작전]]을 성공시켜,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를 점령하였다. 독일군은 영국과 프랑스의 허를 찌르며 기갑부대를 [[아르덴느삼림]]을 통과시켜 영,프연합군을 포위한다. 포위된 영,프연합군은 [[덩케르크]]해안에서 영국으로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많은 병력이 빠져나갔으나 대부분의 장비를 잃는다. 이 때 빠져나간 프랑스군은 [[드골]]의 [[자유프랑스군]]의 일원이 되어 이후 독일과 싸우게 된다. 덩케르크에서 주력부대를 모조리 잃은 프랑스는 독일에게 쉽게 항복해 버리고 독일은 프랑스 북부는 직접 점령하고 남부에는 [[비시프랑스]]라는 괴뢰정부를 세운다. 독일 공군사령관 [[괴링]]은 공군을 이용하여 영국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영국 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패배한다. 이후 영국에 육군을 상륙시키려 했던 [[바다사자 작전]]은 취소된다.
 
한편, 영국의 수상함대와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던 독일 해군은 [[U보트]]라 불리우는 잠수함을 투입하여 연합군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였다. 피해가 극심하자 호송선단을 만들고 구축함을 대거 투입하는 등 대응책을 내놓아 피해가 줄어들긴 했으나 전쟁 내내 U보트는 대서양과 지중해, 북해 등지에서 맹활약하였다.
 
바다사자작전이 취소된 이후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관심을 돌려 1941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와 독일과의 동맹에 반대하는 정변이 발생한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를 모두 점령하고,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동맹국으로 삼았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약 30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동부 유럽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기습공격은 크게 성공하여 소련군은 개전 초기에 엄청난 병력을 손실하고 빠르게 패퇴하였다. 독일은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보급 부족과 겨울의 시작으로 인해 모스크바공방전에서 패한다. 1942년에는 [[코카서스]]와 [[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 자원 및 [[드네프르공업지대]]의 확보를 위해 이른바 [[청색 작전]]을 입안하여 남부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 제6군|6군]]이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에 의해 포위되어 전멸하였고, 코카서스로 진격했던 군대들도 후퇴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독일은 [[하리코프공방전]]을 통해 소련에 반격을 가해 큰 타격을 주었으나 영국과 미국의 막대한 전쟁물자 지원과 함께 [[우랄산맥]] 동쪽으로 이전한 소련의 공업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소련의 전력은 급속히 강화되어 서로의 세력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티이거]],[[판터]]등 신형전차를 전선에 보충하고 [[치타델 작전]]을 입안하여 소련의 [[쿠르스크]]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으나 이미 독일의 정보망을 꿰뚫고 있던 소련은 독일의 공세에 충분히 대비해 놓고 있었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은 90만명 이상에 달하는 병력과 3천여대의 전차,2천기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하며 승리를 장담하였으나 소련측의 병력은 독일의 예상치보다 훨씬 신속하게 불어나서 그보다 강했다. [[쿠르스크전투]]에서 독,소 양측은 서로 막대한 전력을 소진하였는데 소련은 이를 쉽게 복구하였으나 독일은 그렇지 못하였고 그 뒤로 소련에게 패퇴하기 시작한다. 소련은 [[명왕성작전]]을 통해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괴멸시키고 독일은 동부전선이 급속히 무너지며 빠르게 서쪽으로 쫓겨나기 시작한다.
 
영국과 미국은 개전초부터 항속거리가 긴 4발 중폭격기를 사용하여 독일의 주요공업지대와 주요 도시들을 전략폭격한다. 특히 소련침공 후 [[루프트바페]]가 소련과 독일본토로 분산되자 공습은 더욱 용이해진다.
영국은 폭장량이 많은 [[랭카스터]] 같은 폭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공습을, 미국은 정교한 폭격조준장치와 여러 정의 엄호기관총을 가진 [[B-17,B-24]]등의 폭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간공습을 주로 담당하였다. 특히 [[P-51 머스탱]]의 등장 이후에는 독일 본토까지 엄호전투기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독일은 [[V-1]],[[V-2]]등 로켓무기를 개발하여 영국으로 끊임없이 발사하였으나 무유도 병기여서 그다지 효율은 높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병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르빈 롬멜]] 장군과 [[독일 북아프리카군단|북 아프리카 군단(DAK)]]이 선전하였으나,[[몰타섬]]에 위치한 영국 공군과 [[지중해함대]]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끊겨 나날이 강화되는 영국군에게 전력상 열세에 놓인다. 이에 영국군의 [[몽고메리]]장군은 [[엘알라메인]]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밀어내고, 독일군은 1943년 초 [[튀니지]]에서 항복하면서 완전히 축출된다. 이후 연합군은 [[시실리]] 및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복귀시킨 후,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이 [[이탈리아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전선]]은 유례없는 산악전으로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무솔리니는 [[살로공화국]]이라는 독일의 괴뢰정부의 수장을 맡았으나 살로공화국은 사실상 아무 힘도 없었다.
 
한편 독일은 영국과 미국의 상륙작전에 대비하여 대서양 해안을 따라 1942년부터 소위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외국 포로가 동원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네덜란드까지 연결되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의 [[디에프 기습 공격]]에서 얻은 전훈을 참고하여 1944년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독일 내에서는 동부전선의 급속한 붕괴에 따른 소련군의 빠른 진격과 서부전선에서의 불리한 전황 등에 따라 전쟁이 패했음을 깨닫고 히틀러를 암살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워 연합군과 강화하려는 세력이 나타났다.
이들은 매우 치밀하게 조직되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의 회의실에서 폭탄을 터뜨렸으나 히틀러는 살아 남았고, 쿠데타 세력은 곧 진압되었다. 이 와중에 쿠데타 세력과 연루 혐의를 받은 [[롬멜]],[[클뤼게]]등 유능한 지휘관들이 숙청 되었다.
 
독일군은 서부에서 흔히 [[벌지 대전투]]로 불리는 [[라인 강 수비 작전]]으로 전세의 재역전을 노렸으나, 작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동쪽에서 소련군은 계속 진군하여 핀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추축동맹국들이 소련에 항복한다. 결국 5월 1일, 소련군은 총공세를 취해 [[베를린]]을 점령하고, 히틀러는 해군제독 [[되니츠]]에게 총통자리를 넘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뒤 측근들에 의해 불에 태워진다. 영미연합군과 소련군은 [[엘베 강]]의 [[토르가우]]서로 만나게 된다. 독일은 1945년 5월 7일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고, 5월 8일에는 동부의 소련군에게 항복하였다. 한편 무솔리니는 가망이 없는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빨치산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게 된다.
 
독일군은 2차대전 내내 나치스의 인종주의 이론에 따라 수백만의 유태인, 집시족 등을 [[아우슈비츠]]등 여러 수용소에 수용하여 대량 학살하거나 강제노동을 시켰다.
또 소련 등 점령지에서도 대거 인종청소를 감행하였다. 이에 나중에 독일본토로 진격해 들어온 소련군도 독일 민간인들에게 잔혹하게 보복하는 등 민간인 학살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