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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반, [[리보니아]]에서는 [[뤼베크]]와 [[브레멘]]에서 독일인 상인들과 같이 온 독일인 선교사들과 현지의 이교도 원주민들 간의 알력이 나날이 고조되어 소규모 전투가 빈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1199년에 리보니아 주교구의 주교로 발령받은 [[시토 수도회]] 출신의 알베르트는 이 지역 교회를 지키고 이교를 신봉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선교활동을 위해 1200년 3월 동방 십자군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는 이때 모인 병사들을 자신의 가신으로 삼아 훈련시킨 후, [[리가]]로 이동하여 그곳 지역 주민들을 공격하여 복속시켰다. 또한 1201년에는 자신의 주교좌를 리가로 이전시켰다. 이를 위한 사전준비로서 알베르트는 1202년에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는 이름의 상설 군사기구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기사단의 활동 덕분에 리보니아는 대부분 정복되었으며 에스토니아도 1218년 기사단이 북쪽을 공략하면서 점령되었다.
 
그러나 정복당한 이교도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전투 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적들을 잔인하게 살육하면서 기사단의 악명은 멀리 로마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결국 기사단을 진정시켜 활동을 제약하려고 온 교황 특사에게까지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다. 악명으로 인해 고립이 심화되어가던 기사단은 이윽고 1236년 리투아니나군에리투아니아군에 참패를 당하였다. 다음해 1237년 튜튼 기사단에 흡수 합병되면서 와해된다.
 
[[Image:Kalavijuociai.jpg|thumb|100px|<small>기사단의 문장</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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