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언론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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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민족운동가·독립유공자이며[[독립운동|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일제 강점기|일제시대]]에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며 민족자본육성[[민족자본]]육성 활동과 재정난을 겪은 [[중앙고등학교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등을 인수, 운영하며 교육활동을 하였고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동아일보]]를 경영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고 가담하지 않았다.
[[8·15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조직과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1947년]] [[3월]]부터 정부 수립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국무위원]]을 지냈다.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였고,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창당과 [[호헌동지회]]를 주관하였다. [[경성방직]]·[[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뒷날의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며 [[동아일보]] 창설자의 한 사람이다. 자는 판석(判錫), 아호는 인촌(仁村). [[가톨릭]] 세례명은 [[바오로]]라 하였다.<ref>인촌기념회, 인촌김성수전(인촌기념회, 1976) 680페이지</ref><ref>세례명은 임종 5시간 전인 정오 12시, [[장면]]의 권고로 대세받았다.</ref> [[조선시대]]의 유학자 [[김인후]](金麟厚)의 13대손이다. [[전라북도]] [[고창군|고창]] 출생으로, [[부안군|부안]] 줄포에서 자랐으므로 [[부안군|부안]]을 고향으로 보기도 한다. 선대의 고향은 [[전라남도]] [[장성군|장성]]이므로 [[장성군|장성]] 출신으로도 본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