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궁중무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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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악무=====
이상아래 6종에 대해서는 <[[고려사]]> <악지> <당악정재홀기>와 <[[악학궤범]]> <시용당악정재도의> <무용종류기록철> 등을 보면 외국에서 발생되어 고려시대에 수입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만 어느 때 한반도에 들어온 것인지에 대하여는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전기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을 참고하여 고려 때 발생된 춤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수연장무(壽延長舞)
:[[고려 성종]] 때 지은 무용이다. 죽간자(竹竿子) 2명, 무원(舞員) 8명으로 이루어진 이 춤은 임금의 장수(長壽)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먼저 죽간자가 나아가 구호를 부르고 난 다음 원무(元舞) 8명이 나아가서 미전사(尾前詞)·단운영채색(丹蕓映彩色)을 외면 춤은 그제야 본격화 한다. 죽간자의 마지막 구호가 끝나고 죽간자와 원무가 처음 자리로 물러서면 [[음악]]이 그치고 춤도 함께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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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송나라]]에서 전래한 [[중국]] [[무용]]의 하나이다.
{{인용문|{{ja-y2|五仙騎五羊|오선기오양}} {{ja-y2|何代降玆鄕|하대강자향}}|이군옥(李群玉)<ref>[[당나라]]의 시인</ref>|<창포간시(菖蒲澗詩)>}}
:그 주(註)에 <환우기>를 인용하여 고고가 [[초나라]]의 재상이 되자 어디선지 선인이 5색의 양을 타고 내려와서 벼이삭을 고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하였다. 이로써 5양선을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7명이 추는 이 5양선은 왕조의 서기(瑞氣)를 노래하며 춤춘다. 특히 이 춤에서 주목되는 바는 송악(宋樂)의 하나로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보허자령]](步虛子令)'을 반주음악으로 쓴 점에 있다.
 
;6화대무(六花隊舞)
:[[고려]] 때 비롯한 춤으로, 옥색·초록·자적(紫的)·진홍·양람(洋藍)·분홍색의 여섯 가지 [[꽃]]들과 그 꽃의 중심되는 중예와 따로 죽간자(竹竿子) 9명으로 구성된다. 그중 6명이 3명씩 나뉘어서 각각 홍(紅)과 남(藍)으로 차려입고 추는데 먼저 죽간자가 화심가(花心歌)를 부르면 중심무(中心舞)가 그 답사(答詞)를 섬긴다. 다음 원무 일동이 차례로 한명씩 1념시(一念詩)·2념시(二念詩)·3념시(三念詩)의 화심(花心)을 읊고, 또 그것을 노래로 옮겨 부른 다음 화사한 꽃춤을 보이는 것이다.
;연화대무(蓮花臺舞)
 
;연화대무(蓮花臺舞)
이상 6종에 대해서는 <고려사> <악지> <당악정재홀기>와 <악학궤범> <시용당악정재도의> <무용종류기록철> 등을 보면 외국에서 발생되어 고려시대에 수입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만 어느 때 한반도에 들어온 것인지에 대하여는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전기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을 참고하여 고려 때 발생된 춤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두 여자아이가 고운 의모(衣帽)에 금방울을 흔들며 추는 춤인데, 처음에는 연꽃에 숨었다 꽃을 꺾고 나타난다. 무원(舞員) 32명이 보허자(步虛子)와 그 밖의 세 곡조의 반주에 따라 춤을 추며, 두 개의 연화관(蓮花冠)을 중심으로 4인의 여기(女妓)가 상대(相對)·상배(相背) 또는 도약(跳躍) 등으로 춤을 추면, 협무(挾舞)는 이에 따라 추고, 왕화(王花)인 연꽃의 정(精)이 나타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조선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