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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Brune c.jpg|right|thumb|250px|기욤 마리 안느 브륀]]
'''기욤 마리 안느 브륀'''(Guillaume Marie Anne Brune, 1st Comte Brune, [[1763년]] [[3월 13일]] [[프랑스]] [[브리브라가야르드]] ~ [[1815년]] [[8월 2일]] [[프랑스]] [[아비뇽]])은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원수로 처음에 문필활동에 뜻을 두어 [[프랑스]] [[파리 (도시)|파리]]에서 혁명지도자 [[조르주 당통]]과 친교를 맺고 소책자를 내주었다.

뒤이어 북부군 숙청작업 책임위원이 되었고 공포정치체제의 관리들을 보르도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1792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절친한 친구 [[랑발]] 부인 살해사건에 연관되어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되었다.

[[파리 (도시)|파리]]에서 [[폴 바라스]] 및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함께 일했고 [[1797년]] [[이탈리아]]에서 3개월간 복무한 후 사단장이 되었다.

바라스는 브륀의 힘을 빌어 [[헬베티아 공화국]]과 주기 [[치살피나]], [[바타비아 공화국]]을 [[프랑스]]에 복속시켰다. [[1799년]] 9 ~ 10월에는 [[네덜란드]] [[베르헨 전투]]와 [[카스트리큉 전투]]에서 [[영국]]-[[러시아]] 동맹군을 무찔렀다.

[[1800년]] 12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고 [[1804년]] 원수가 되었다. [[1807년]] [[슈트랄준트]]에서 스웨덴을 몰아냈고 [[1815년]] [[백일천하]] 때에는 [[프로방스]]를 지켰다. 그러나 [[백일천하]]의 사태 평정 후 [[아비뇽]]에서 성난 군중들에게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그러나 [[백일천하]]의 사태 평정 후 [[아비뇽]]에서 성난 군중들에게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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